글래스고에서 에든버러까지는 버스로 1시간 반 가량 걸린다. 섬으로 된 영국의 국토가 토끼 모양을 하고 있다고 치면, 토끼 목덜미의 좌측과 우측에 이 두 도시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큰 두 도시가 이웃을 하고 있는 셈인데, 두 도시의 분위기와 느낌은 사뭇 다르다.
에든버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서 깊은 도시다. 관광객들도 에든버러가 글래스고보다는 훨씬 많다. 그럼에도 내 개인적으론 고전과 모던의 분위기가 잘 어우러진 글래스고가 오늘 얘기하려는 에든버러보다 오히려 더 마음에 들기는 했다.
글래스고는 대서양을 향해 있고 에든버러는 북해를 향해 있다. 글래스고가, 유럽이 대서양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영국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이끈 도시라면, 에든버러는 북해가 중심이었던 옛 유럽의 고도인 셈이다. 에든버러는 어딘지 모르게 우수(憂愁)를 느끼게 한다.
에든버러의 중세적 석조 건물들은 우아하다 못해 다소 기괴할(?)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 오고 흐린 날씨에는 우중충해 보이기까지 한다. 칼튼 힐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건물들은 회색빛이고 이 때문에 그 너머의 북해 바다도 잿빛으로 보인다.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로 유명한 음악가 멘델스존은 1829년 이곳 에든버러를 방문하여 스코틀랜드 여행을 한다. 그림에도 재주가 있었던 그는 바로 칼튼 언덕서 에든버러의 풍경을 목탄(?) 스케치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림 속 풍경이 스산하다.
울퉁불퉁한 회색빛 바위 언덕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에든버러 고성도 견고한 모습이지만, 다소 투박하고 우울해 보이는 면이 있다. 그 성문을 나와 에든버러의 관광 명소들이 있는 길을 거쳐 약 2km 내려오면 그 길 끝에 홀리루드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피의 메리’라 불리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구성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그녀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실, 신교와 가톨릭의 알력과 갈등 속에서, 여왕의 신분임에도 자신의 최후를 단두대서 맞은 비극적 인간이다.
멘델스존은 홀리루드 궁전을 방문해 여왕과 관련된 궁중 비사를 듣고 그 충격으로 <스코틀랜드교향곡>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왕실의 피비린내 나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가 에든버러를 떠나 하일랜드 지방을 여행하면서 가진 느낌이 뒤섞여 이 교향곡이 탄생된 듯싶다.
하일랜드는 스코틀랜드에서도 북쪽 지역이다. 황량하고 원시적이며 웅장한 자연 풍경은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풍경이다. 괴물이 산다는 네스 호수가 있는 곳도 이곳 하일랜드다. 산이래야 언덕 정도나 있는 북독일 출신인 멘델스존은 이러한 풍경에 무척 놀랐으리라.
나는 하일랜드 여행을 하면서 하일랜드 북서쪽 대서양 연안의 조그만 항구를 두르기도 했다. 멘델스존 역시 하일랜드를 지나 거친 파도가 이는 대서양에 이른다. 그의 여행은 여기서 배를 타고 헤브리디스의 도서들을 거쳐 ‘핑갈의 동굴’이 있는 스태파 섬까지로 이어진다.
멘델스존 음악의 기조는 ‘향수’ 또는 ‘동경’이다. <스코틀랜드> 1악장은 (고향 등의) 상실감서 오는 짙은 애수로 시작된다. 2악장은 애수가 삶의 환희로 바뀌고, 3악장은 애수와 환희가 균형을 찾는다. 4악장에선 어쩔 수 없이 1악장의 애수로 다시 돌아가면서 끝을 맺는다.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 역시, 영원한 고향을 찾아가려는 희망찬 동경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결국은 그곳에 이르지 못하리라는 예감에서 비롯된 애수가 기본 정조를 이룬다. 멘델스존의 이국취향은 향수와 동경의 바탕이 된다.
다른 음악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멘델스존은 여행을 비교적 많이 한 음악가다. 이태리 여행은 <이태리 교향곡>을 탄생시키고, 스위스 융프라우 인근에 있는 벵겐 마을은, 멘델스존이 자주 찾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매년 8월 그를 기리는 뮤직위크가 벵겐 교회서 열린다.
모차르트 역시 유럽 곳곳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모차르트 음악의 매력적 스타일은 부분적으로 여행의 결과이기도 하다. 오페라의 탄생지인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계발한 서정적인 자질은 모차르트 음악에서 결정적이다. 모차르트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행하지 않는 인간은 (적어도 예술과 학문에 관여하는 자라면) 비참한 인간이다. 평범한 재능을 지닌 인간은 여행하든 말든 언제까지나 평범한 채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인간은 늘 같은 곳에 머물면 못 쓰게 된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나 ‘먼 것’에의 향수와 동경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 또는 진리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도 인간의 운명이다. 이런 향수와 동경이 예술가들을 여행으로 이끈다.
멘델스존은 원래 유대인 집안 출신이다. 기독교로 개종해 유럽대륙의 문화계에서 중요한 지위에 올랐다. 멘델스존이 죽은 후, 반유대주의자 바그너는 <‘음악 속의 유대교>라는 책에서 유대주의 운운하며 멘델스존의 이런 애수 어린 멜로디나 리듬에 야비한 공격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