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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만무방>의 송이버섯과 ‘자연인’

by 양문규

미국 태평양 북서부 연안에 있는 오리건 주로 안식년을 갔다 온 선생이 말하길, 그곳의 자연과 기후가 강원도 영동지역과 아주 비슷하다고 했다. 영동지역이 태백산맥과 동해바다가 만나듯이, 오리건 주는 태평양 바다와 캐스케이드산맥이 만나는 곳이다.


더욱이 흥미로운 건 영동지역의 소금강, 오대산 등의 산지에서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데, 그곳 캐스케이드 산지도 송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리건에도 송이를 전문적으로 채취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주로 동남아에서 온 난민들이라고 한다.


이 난민들은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을 도와 밀림, 산악 등지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던 라오스와 캄보디아 쪽 사람들이다. 공산베트남이 들어서자 불가피하게 미국으로 이주해 오는데, 이들은 당연히 미국사회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밀림 등에 익숙했던 이들은, 오리건 산지로 들어가 버섯채취 일을 한다. 일본으로의 수출판로가 있기 때문에 이들의 생계유지가 가능해진다. 이들 중 일부는 설사 미국사회서 안정된 일자리를 잡더라도 이를 팽개치고 버섯채취 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노동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들은 물질 소유를 포기하고, 자유가 가져다주는 불안정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는데, 굳이 숲으로 들어가려는 자신들의 열망을 ‘열병’과 같은 것이라고 묘사한다.


김유정의 대표작 「만무방」(1936) 서두는 가을이 무르녹는 강원도 산골에, 주인공 ‘응칠’이 유유자적 송이를 찾아다니는 데서 얘기가 시작된다. 한창 바쁜 추수철임에도 닭서리에 노름이나 하고 다니는 ‘만무방’(막돼먹은 인간) 응칠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근면한 소작농이었다.


그러나 지주의 소작료를 견디지 못해 처자를 데리고 밤도망을 쳐 유리걸식하다가 눈보라 치는 밤 처자와 갈라서고 이제는 도박, 절도 등의 전과 사범으로 떨어졌다. 반면 응칠의 아우는 형과는 달리 아직은 성실한 소작농이지만 병든 아내를 수발하느라 살림이 거덜 난다.


아우는 타작 후 지주에게 모든 걸 빼앗길까 봐, 밤을 타서 자신의 벼를 훔치는 도둑 아닌 도둑 신세가 된다. 응칠은 아우에게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자신과 함께 소 도둑질을 하자고 제안한다. 아우는 굶어 죽을지언정 형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하며 작품이 끝난다.


이 작품은 누가 읽어봐도 식민지 농촌사회의 궁핍한 현실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주인공 응칠은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한창 바쁠 추수 때지만 그는 꼭 해야 할 일이 없다. 하고 싶으면 하고, 말면 말고 그저 그뿐이다.


먹을 것이 있어 그러냐면 있기는커녕, 앞서 얘기했듯이 부쳐 먹을 농토조차 없고, 계집도 없고 집도 없다. 그날도 친구가 찾아와서 벼를 털 텐데 일 좀 해달라는 걸 마다했다. 몇 푼 받자고 그까짓 걸 누가 하느냐, 보다는 송이가 좋았다.


이 땅 삼천리강산에 늘어놓은 곡식이 말짱 누구 거람? 먼저 먹는 놈이 임자 아니야. 걸리지 않으면서 먹을 궁리나 하는 게 장땡이다. 물론 응칠은 몇 번 걸려 감옥소 밥도 먹고 나왔지만 결국 제 밥상 위에 올라앉은 제 몫도 자칫하면 먹다 걸리기는 매일반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응칠이 버섯을 찾느라 향을 맡고 땅에 엎드려 버섯을 느끼는 모습은 흥겨워 보이기조차 한다. 손에는 칡으로 엮어 둔 일곱 개 송이. 늙은 소나무마다 가서는 두리번거린다. 사냥개 모양으로 코로 쿡, 쿡 내를 한다. 토끼 똥이 소보록한데 갈잎이 한 잎 똑 떨어졌다.


그 잎을 살며시 들어보니 송이 대구리가 불쑥 올라왔다. 그 앞에 무릎을 털썩 꿇는다. 두 손을 내들며 열 손가락을 다 펴든다. 가만가만히 살살 흙을 제쳐본다. 주먹만 한 송이가 나타난다. 에, 이놈 크구나, 손바닥 위에 따 올려놓고는 한참 들여다보며 싱글벙글한다.


응칠은 송이 꾸러미에서 그중 크고 먹음직한 놈을 하나 뽑아 들어 물에 썩썩 비벼서는 떡 벌어진 대구리부터 물어 뗀다. 혀가 녹을 듯이 만질만질하고 향기로운 그 맛, 이렇게 훌륭한 놈을 이전엔 입맛만 다시고 못 먹다니…


강원도 산골이 송이의 본고향이로되 일 년에 한 개조차 먹는 놈이 드물다. 옛날에 요행히 송이 한 꾸러미 차면 금시로 장에 가져다 팔았다. 잘하면 사십 전, 못 받으면 이십오 전, 응칠은 저녁거리를 기다리는 아내를 생각하며 좁쌀 서너 되를 손에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지금 응칠은 지가 먹고 싶은 대로 먹는다. 송이 두 개 들어가니 고기 생각이 나서 닭서리를 한다. 고기를 먹으니 막걸리 생각이 나 주막으로 가 송이로 술값을 치른다. 김유정 소설에는 만무방 말고도 집시(?) 비슷한 들병이, 깍정이, 따라지 같은 일탈적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현존하는 권력과 세상을 지배하는 진실을 우습게 본다. 아등바등 이해관계를 좇아 살아가야 하는 삶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워져 세상을 달리 뒤집어서 보려 한다. 사람들이 TV의 <나는 자연인이다>를 꿈꾸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김유정은 결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무정부주의자라고나 할까? ‘자본주의’와 ‘국가’라는 오래되고 익숙한 길을 거부하는,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꿈꿨던 것 같다. 미국으로 이주한 동남아 난민들이, 자본주의 사회 바깥 오리건 산지로 버섯을 찾으러 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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