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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의 섹슈얼리티

by 양문규

<춘향전>은 현재까지 확인된 판본이 백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 내가 온전히 읽어본 춘향전은 19세기에 가장 널리 읽혔다고 얘기되는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다. 한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리가원 선생이 주석을 단 춘향전을 교재로 삼은 국문학 강독 수업에서였다.


중간고사 전까지 내내 춘향전을 읽는 것이었는데, 수업은 학생들이 윤독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선생은 윤독 도중 가끔씩 당신이 내키는 대로 작품 속 한자나 고사 등을 골라 이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설명은 거의 잡담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의 생각은, 초등학생 수업도 아니고 소설을 돌아가며 소리 내 읽는 것이 뭔 의미가 있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나마 그런 수업이 없었으면 누구나 다 아는 춘향전이지만 이를 언제 제대로 끝까지 한 번 읽어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 가르칠 때 내 강의는 안 들어도 되니, 작품은 꼭 읽어보라는 지극히 당연한 권고를 한다. 완판본 춘향전에서 18장~22장은 춘향과 도련님이 첫날밤을 치르는 장면이다. 우리 과에 여학생이 많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부분을 여학생들이 낭독했다.


엄청나게 야한 장면과 묘사가 나와 여학생들 목소리는 점점 모기소리 만해 지고, 남학생들의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선생은 좀 더 목소리를 키워서 크게 읽으라고 야단까지 치니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웃음이 새어 나왔던 기억이 난다.


18장은 도련님이 춘향의 속옷부터 차례로 ‘공교’히 벗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옷을 벗으라는 도련님과 이를 부끄러워하는 춘향이가 서로 실랑이를 벌이던 끝에, 춘향의 옷이 활딱 벗겨지면서 ‘형산의 백옥덩이’ 같은 춘향의 몸이 드러난다.


21장에서는 알몸이 된 남녀가 이른바 ‘업음질’을 한다. 벗은 도련님이 벗은 춘향을 등에 업는다. 도련님은 “어따! 그 계집아이 똥집장이 무겁다”라고 즐거운 푸념을 한다. 그러면서 춘향 보고는 내 등에 업힌 네 마음은 어떠냐고 물으니, 춘향은 끝내주게(?) 좋다고 대꾸한다.


22장에서는 도련님은 자기가 춘향을 업어줬으니 이번에 춘향이보고 자기를 업으라고 한다. 춘향은 도련님을 업고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도련님은 이어 ‘말놀음’을 제안한다. 둘이 모두 다 벗은 김에 춘향보고는 은 방바닥을 기어 다니라고 한다.


도련님은 춘향이 궁둥이에 딱 붙어서 춘향의 허리를 잔뜩 끼고 볼기짝을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이리” 하면, “흐흥” 하면서 뒤로 물러서듯이 뛰라고 한다. 둘은 이렇게 온갖 장난을 다 하면서 미친 듯한 마음으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논다.


<춘향전>의 표면적 주제는 당시의 봉건적‧유교적 이데올로기인 불경이부(또는 불사이군) 즉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이다. 그 이면에는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한 변학도로 대변되는 봉건사회의 모순을 고발,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춘향을 통해 유교적 이념에 묶인 여인이 아니고, 살아있는 한 인간 즉 근대적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일 것이다. 춘향과 이몽룡이 나누는 대담한 섹스 행위는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봉건적 이념에서 활짝 해방된 개인을 보여준다.


그런데 근대소설을 강의하는 나로서는 참 이상한 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이라고 하는 이광수의 <무정>(1917년)에 오면 <춘향전>에서 나타나는 섹슈얼리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그것도 명색이 자유연애를 주제로 하는 소설인데 그렇다.


<무정>은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그 내용이 썰렁하다. <무정>은 사랑의 욕망을 그리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러한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가를 그린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설사 욕망을 그린다 치더라도 엉뚱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무정>의 여주인공 기생 영채가 그녀의 선배 기생과 벌이는 동성애는 단지 호기심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또는 영채가 술자리에서 남자 손님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유난히 부각된다. 성적 욕망은 건강한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방종이나 타락으로 치부된다.


우리 근대소설은 진보든 보수든 성적 욕망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는 것을 대단히 꺼린다. 그 배경과 이유는 딴 지면을 빌려 얘기해야겠지만, 개화기 당시 일본이나 우리 땅에 들어온 기독교 프로테스탄티즘의, 욕망을 죄악시하는 금욕주의에 기인한 일면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근대소설은 18~19세기에 등장했던 조선시대 소설보다도 근대성에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이후 1920년대 나도향이나 1930년대 김유정, 이상, 박태원 소설 등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성적 금욕주의의 굴레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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