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는 해방 전후로 해서 서울 숙명여고를 다녔다. 박완서와 동갑인 우리 어머니도 그 시절 서울의 진명여고를 다녔다. 박완서와 같은 시절을 공유한 셈인 어머니는, 박완서 소설에 등장하는 박완서 자신의 소녀 내지는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읽곤 하셨다.
박완서는 해방 전인 1944년 숙명고녀에 입학했는데, 해방이 된 후 박노갑이라는 소설가가 그 학교에 국어 선생으로 부임한다. 박완서의 담임선생을 맡기도 한 박노갑은 여고 시절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던 그녀에게는 당연히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박노갑은 겨울에는 옥양목에 검정 물감을 들인 검소한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 학생들에게는 한문도 가르쳤나 보다. 박완서는, 선생님이 흥에 겨워 한시를 낭랑한 목소리로 읊을 적에는 그 검정두루마기가 참 잘 어울렸다고 회고한다.
박완서는 박노갑과 관련된 학창 시절의 한 일화를 그녀의 자전적 소설에서 그린다. 한 번은 수업을 빼먹고 친구와 함께 학교 근처 화신백화점 오 층의 영화관을 갔다. 정전이 잦았던 상황에서 상영시간이 길어져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니 바깥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서둘러 학교로 돌아갔으나, 청소까지 깨끗이 끝난 교실에는 두 사람의 책가방만이 나란히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칠판엔 두 학생은 돌아오는 대로 곧 교무실로 오라는 담임 선생님의 엄명이 있었다. 교무실로 갔으나 선생님들은 다 퇴근했다,
숙직 선생을 찾아가서는 담임선생 자택의 주소와 약도를 알아내, 서대문 현저동 산동네에 위치한 선생님의 집을 어렵사리 찾아간다. 선생 댁을 찾았을 땐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선생님은 아직 안 들어오셨다. 사모님한테 찾아온 뜻을 전했다.
선생의 집은 아주 조그만 일각대문 집이어서 대문 밖에서 그 구차한 살림형편이 다 들여다보였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더 간절해지게 했다. 다음날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는 뭘 그까짓 일로 집까지 찾아왔냐고 관대하게 넘어갔다.
박완서는 선생을 존경했음에도 실제 박노갑이 당시 신문에 연재하던 역사소설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내가 읽어봐도 그렇다. 단 박완서가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개인적으론 일제 말에 발표했던 박노갑의 단편소설 <삼인행>(1940년)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삼인행>에선 대학을 나온 룸펜 처지의 두 친구와 고무공장을 다니다 실직한 세 명이 모여 문밖 가난한 동네서 쌀장사를 벌이는 얘기다. <논어>엔 ‘삼인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글이 있지만, 이 소설은 삼인이 쌀가게를 하다가 망하는 이야기다
이들의 쌀장사란 정미소 쌀을 떼와 이를 봉지쌀로 파는 것이다. 이 장사의 요령은 됫박(되)질의 다양한 기술(?)을 익혀 손님들에게 많이 주는 양 속이는 것이다. 이 책상물림들은 그게 하루 이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양심껏 해서 신용이나 잃지 말자고 한다.
가령 엄지손가락을 되 안에 푹 집어넣고 되를 들되 비스듬히 들고, 쌀을 한목 알맞게 퍼서 슬쩍 담으며 손바닥으로 되 한복판을 갈겨 올려야 쌀이 덜 든다는 등의 별별 기술이 있으나 설사 섣불리 재주를 부리다가 신용만 잃고 속임수가 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장사가 안 되니 결국은 비싼 쌀 한 가마에 싼 쌀 두 가마를 섞어 파는데 오던 손님마저 떨어뜨린다. 좀 이문이 남는 문안 배달은 쌀가마를 자전거에 싣고 가는 건데, 여간 애를 먹지 않는 게 문안의 복잡한 길 굽이를 돌다 넘어져 죽을 고생을 치르기도 한다.
작가는 이들 삼인을 유머러스하게 또는 냉소적으로도 그리고 있지만 그 유머는 씁쓰레하고 슬프다. 이 소설은 일제 말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으나 어디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힘겹게 그 시대를 살아나가야 했던 지식인들의 어려운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렇다면 해방이 되고 나서 조국의 상황은 좋아졌던 것일까? 박노갑은 6‧25가 발발하자 미처 피난을 가지는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었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적 치하에서 그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인민군에 협력을 했던 듯싶다.
9‧28 수복 후 다시 국군이 서울을 재점령하자 그는 부역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 감금된다. 그는 월북 작가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한국전쟁 중 국군이 서울을 점령한 시기에 정상적인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형을 당한다. 일제 때도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죽이진 않았다.
박완서의 소설에서 나타난 박노갑의 모습, 또는 그의 단편 <삼인행>에서 엿보이는 작가 박노갑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한 시대가 양심적인 지식인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가슴 아프게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