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야는 식민지 시기 주요한 작가로 활동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고향은 함경도 함흥으로, 해방 직후 분단이 될 당시 북쪽에 머물고 있었다. 이른바 재북(在北) 작가였기 때문에 해방 이후 남한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단편 <과도기>(1929)는 우리 소설사에서 공장노동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조선일보에 연재한 <황혼>(1936)은 방적공작 여성노동자와 그들의 파업을 그린다. 그는 주로 노동자‧농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간혹 사회주의 지식인의 전향을 다룬 소설도 썼다.
그러나 일제 말에는 노동세력도 약화되고 검열이 강화되는 상황서, 이 같은 종류의 소설을 쓰지는 못하고 역사소설로 눈을 돌린다. 역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조선 시대 등의 역사를 다룬 것이 아니고,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개화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쓴다.
그래서 탄생된 역사소설이 <탑>(1940)이다. <탑>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 또는 가족의 삶을 당대의 역사적 현실의 변화와 관련지어 그린 ‘가족사소설’이다. <탑>의 소년 주인공 ‘우길’은, 작가 한설야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작품은 작가의 유년 시절인 1904년 노일전쟁 즈음해서 시작한다. 이후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고 순종이 즉위하면서 의병이 봉기하는 1907년 상황이 작품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된다. 소년 우길의 고향은 한설야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함경도 함흥 지역이다.
함경도 일대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의병들이 들고일어난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이가 차도선과 홍범도이다. 물론 일제하 발표된 <탑>에서는 이들이 ‘의병’이 아닌 ‘폭도’라고 지칭된다. 이들 폭도들은 함경도 북청 이북 산간을 무대로 활동한다.
이들은 먼저 차도선이라는 이를 대장으로 삼백 명이 조직돼 친일 엽관배들의 무리였던 일진회원들을 참살하고 함경도 지역의 군대와 관리들을 공격한다. 당시 대한제국 군대는 이미 해산됐고 폭도를 진압하는 토벌대는 일본군 북청 수비대와 헌병대, 경찰의 연합수비대였다.
차도선은 이들 토벌대에 대항하다가, 사세가 불리해지자 자기 도당의 두목의 목을 잘라 바치고 부하 250명을 이끌고 일본군에 귀순한다. 이렇게 해서 관북 일경이 잠잠해지는가 했다. 여기서 다시 들고일어난 이가 홍범도다.
홍범도는 차도선이 휩쓸고 지나간 관북 지방 삼수갑산에서 다시 사오백 명의 일당을 모아 그 성세를 뻗쳐나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귀순했던 차도선과 차도선의 부하들도 일본군으로부터 도망을 쳐 홍범도에 다시 합류한다.
한설야 표현으론, “당시 홍범도의 소문은 충천할 듯이 굉장했다.” 북청 수비대는 부속순사대 11명을 홍범도에게 보내 차도선을 회유했듯 그의 귀순을 권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조리 홍범도에게 참살된다. 토벌대는 총공세를 가하고 홍범도는 두만강 건너 러시아로 도망을 친다.
여기까지가 <탑>에서 그려진 홍범도의 행적이다. 일제치하에서 홍범도를 그 이상 그리기가 어려웠으리라. 단
지 <탑>에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 소년의 아버지가 이들 홍범도 등의 폭도들을 귀순시키려는 공작활동을 펼치는 ‘선무대’의 일원으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소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함경도 지방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착부호 세력이다. 이들은 조선 시대 중앙에서 내려온 관찰사 등의 권력과 야합하여 백성들을 등쳐서 부를 쌓는다. <탑>의 소년은 이러한 자신의 선대들을 부패한 봉건세력으로 자기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말 민요(民擾)가 잦아지면서 소년의 집안 역시 민란을 만나 한때 가세가 형지 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민란을 일으킨 무리에게 돈을 빼앗기고 놋 제기, 놋그릇 등은 엿장수의 놋궤 속에 들어간다. 은합, 주발. 놋 촛대, 은촛대 등 심지어 놋요강까지 남의 손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소년 집안의 세도가 그것으로 파장을 치지는 않는다. 소년의 아버지는 새롭게 등장한 일본 세력에 야합해 폭도(의병)를 귀순시키는 선무대로 활동한다. 소년의 아버지가 보기에 홍범도 등의 의병은 이전 민란을 일으켜 양반들 재산을 탈취한 폭도나 다름없다.
홍범도가 당시 함경도에서 의병 활동을 크게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산포수(사냥꾼)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그는 포수로서, 함경도 산지 속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들을 쉽게 규합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유명한 개마고원도 그곳에 위치하지 않은가.
화전민 집단에는, 빚에 몰려 관가송사 난 사람, 역적질한 가솔들, 족보에서 호적이 파저 오갈 데 없는 양반네 자식들, 도망친 노비들, 때로는 동학당도 숨어 있었을 것이다. 반체제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지만, 일반 백성들 입장에서 볼 때는 세상의 죄인들이다.
개화파 작가 이인직은 신소설 <은세계>( 1908)에서 ‘의병’들을, 흉기를 가지고 산야로 출몰하여 인민의 재산이나 강탈하는 폭도로 본다. 그래서 이인직은 의병에게 일본한테 나라 잃은 것만을 분하게 생각하여 경거망동하다가 부질없이 목숨을 잃지 말라고 타이른다.
이보다는 왜 우리가 나라를 잃게 됐는지를 잘 살펴보고 이제부터라도 생업에 충실하여 자식들을 잘 가르쳐서 나라를 찾을 방도나 생각해 보라고 한다. 홍범도는 의병시절에는 ‘폭도’로, 지금은 폭도보다도 못한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