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걸리는 보헤미아 왕국의 옛 도시 쿠트나호라를 가면 소위 해골 성당이라는 곳이 있다. 성당의 원 이름은 세들레츠(Sedlec) 성당이다. 경내에 묘지도 있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당이다. 그런데 그 성당의 지하 예배당이 해골로 장식돼 있다.
입구에는 해골들을 체인 같이 엮어 걸어놓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성당 내 각종 성물도 해골로 장식돼 있다. 엉덩이뼈와 대퇴골로 만든 성배와 십자가도 있고, 샹들리에는 인체 여러 부위의 뼈들을 조합해 만들었다. 어떤 두개골에서는 촛대의 불길이 타오르기도 한다.
애초 이 성당은 중세 시절인 12세기에 지어졌다. 13세기 한 수도사가, 보헤미아 왕의 명을 좇아 예수가 처형됐던 골고다 언덕의 흙 한 줌을 여기로 퍼와 이곳이 소문난 묘지가 된다. 이후 십자군 전쟁, 페스트, 종교전쟁 등으로 희생된 자들의 묘지와 납골당으로 쓰인다.
1870년 이 지역의 목공예 장인이 성당 납골당에 있던 4만 명의 유골 중 1만 명분의 유골을 사용해 종교적 장식물을 만들어 예배당을 꾸민다. 이 성당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다소 소름이 끼치기도 했지만, 나중엔 무섭다기보다는 별 희한한 곳도 다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을 갔다 온 지도 한참이 됐는데 아직도 궁금한 건 이러한 해골 성당을 조성한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쉽게 떠오르는 생각은, 인간이 누리는 쾌락과 영광은 죽음과 함께 ‘모두 덧없이 자나 가리라’라는 종교적 성찰을 갖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에게 삶의 무상함과 더불어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다소 상식적인 것 같다. 이 해골 성당이 조성된 시기가 19세기 후반이다.
이 시기는 자연과학 특히 생명과학 연구가 새로운 성과를 올리던 시기다. 다윈의 <종의 기원>, 의학자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서설>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한다. 이를 흉내 내어 소설가 에밀졸라는 <실험소설론>이라는 문학비평론까지 발표한다.
당시는 인체 해부 실험을 위해 의사들이 무덤을 도굴해 시체를 훔쳐오는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1876)은 아동문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마을 의사가 동네 불량배들과 공모해 공동묘지서 시체를 훔쳐오는 데서 사건이 시작된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1871)는 19세 영국사회의 세태를 그린다. 이 작품에 해부학 연구에 몰두하며 의사와 과학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진 시골의사가 등장한다. 그의 부인은, “당신도 한밤중에 성 베드로 교회의 묘지에 가서 시체를 훔쳐올지도 모르겠군요.”라고 비꼬기도 한다.
19세기는 과학의 자극을 받아 인간의 종교적‧도덕적 의미가 제거되고 인간은 자연 속에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간주된다. 이전의 과학 연구는 주로 무기물에 관계되었으나(화학, 물리학 등), 무기물에 적용되던 과학적 태도와 방법이 유기물 더 나아가 인간 생명체에도 적용된다.
졸라는 자신의 소설을 ‘문학적 시체해부’라고도 비유한다. 해골 성당은, 인간의 자연신체가 과학의 대상이 되면서, 이를 예술의 표현수단으로까지 활용하는 데서 빚어진 결과가 아닐까? 아니면 세기말로 가는 이 시기 유럽 유미주의가 퇴폐 양상을 띠는 것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탐미주의자들은 예술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예술다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퇴폐주의 예술은 기발한 인공미, 기괴미, 인간의 윤리나 풍습에 위배되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해골에서도 미적인 것을 찾고자 했던 것도 그런 것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좀 결이 다른 얘기이긴 하나, 진화론이나 생명과학의 발전은 우생학 같은 아류 과학도 등장시킨다. 1883년 영국의 골턴이 창시한 우생학은, 유전학적으로 인류를 개량할 목적으로, 우등소질의 인종을 증가시키고 열악한 소질의 인종을 감소시키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 우생학은 미국서도 크게 유행해 알코올중독자나 범죄자를 단종시키는 단종법을 탄생시키고 인종차별의 근거로도 쓰인다. 독일의 우생학은 장애인과 유대인을 가스 학살하는 하나의 근거로 쓰여, 과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어떻게 악성 이데올로기가 탄생되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