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선배들이, ‘조선후기농업사’ 분야를 전공한 사학과 김용섭 교수의 한국사 강의를 꼭 들어보라는 얘기를 많이 해줬다. 정식 수강신청을 하지 않을지라도 청강만 하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다면서 그만큼 들어볼 만한 강의임을 강조했다.
나는 교수연구실로 찾아가, 국문과 학생인데 선생님의 과목을 수강신청해도 되겠냐고 문의했다. 선생은 연구실 안 겹겹이 쌓인 책들과 자료 사이로 간신히 얼굴을 내밀고, 지금 생각하면 학생이 무안하지 않게끔 적당히 거절의 말을 해줬던 것 같다.
선생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사학과 학생들이 수강하는 ‘사료비판’ 등의 과목을 선수과목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연구의 대상이 문학작품이듯이, 역사학의 연구 대상은 사료다. 사료비판은 그러한 사료를 읽는 능력의 기초를 닦는 학문이라 할 것이다.
나는 자신이 없어 강의를 듣는 대신, 선생의 저서 <조선후기농업사 연구>를 읽기로 결정했다. 막상 읽기로 시작하니 처음엔 다소 어려웠다. 한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은 주로 조선 후기의 농지 제도 따위와 관련된 한자용어들이었다.
양전(논밭 측량), 양안(농민 측의 토지대장) 등등에 나오는 한자용어들과 함께, 책의 절반이나 되는 통계자료 등이 읽는 속도를 느리게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차차 용어들에 익숙해지면서 뜻밖에도 역사논문을 읽는 것이 소설을 읽는 이상의 재미를 느끼게 헸다는 점이다.
가령 어느 부분을 읽을 때는, 춘경기가 시작되기 전 소작인들이 계란꾸러미나 닭 모가지를 쥐고 좋은 농지를 빌리러 사음(마름)을 찾아가는 풍경 따위가 떠올려지는 체험을 맛봤다. 잘된 역사연구서는 문학작품 그 이상의 것임을 경험한 셈이다.
김소월 시는 보편적 인간사에서 발생되는 그리고 인간이 숙명적으로 걸머진 비애와 한을 노래한다. 그런데 소월 시 중 몇몇 시는 그러한 비애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동아일보> 1924년 11월 24일에 실린 <나무리벌 노래>와, 1925년 신년호에 실린 <옷과 밥과 자유>가 그러한 시들이다. 이 두 시의 시적 화자는 농민들로, 황해도 고향 땅을 떠나 만주 땅으로 이주하게 되는 자신들의 비극적 처지를 노래하고 있다.
나는 김소월의 <나무리벌 노래>의 ‘나무리벌’이 가상의 농촌인 줄 알았다. 이 마을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김용섭의 <재령 동척농장의 성립과 지주경영 강화>라는 논문에서 확인했다. 나무리벌 곧 여물(餘物)리는 대동강과 재령강 하구의 평야지대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 지역은 과거 왕실 농장(궁장)이었다. 조선시대 서울과의 교통이 자유로워 궁장 경영과 농산물 운수가 편리했다. 그러나 조선 왕조가 망하자 이 궁장토는 일본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로 수용된다.
동척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진행 과정서 조선 농민에 대한 수탈을 극대화한다. 과거 궁장토 시절에는 3할 정도의 소작료를 내지만, 동척에는 최고로 8할까지 소작료를 낸다. 심지어 동척은 생산 증대를 위해 신품종, 비료를 공급하고 비료대금은 소작농에게 부과한다.
결국 나무리벌 400여 명의 소작인이 동척의 일본인 지주와 충돌하는데,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소작쟁의에서 지주들의 총포 발사 사건까지 발생한다. 쟁의에 실패한 이곳 농민들은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일제에 협력하는 것이 생리적으로 싫은 자들은 새로운 농지를 찾는 일만 남았고 370여 명의 소작인이 만주로 이산하는 비참한 결과를 내고서 마침내 쟁의는 끝난다. 동척의 주요 목표는 이 사건을 통해 저항적인 소작인을 동척농장에서 몰아내고자 한 것이었다.
당시 이 쟁의는 연일 동아일보 기사로 게재되고 김용섭의 연구도 이 자료들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소월은 그 시기 고향 평안도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했다. 당시의 지국이란 신문 보급의 일말고도 지역 소식을 알리는 일종의 주재원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소월은 서도 지방서 일어난 소작쟁의의 귀추를 주목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그는 이 사건으로 만주 땅으로 이산하게 된 농민들의 비극을 시로 창작, 동아일보에 두 편 게재한 것이다. 1920년대의 어느 시인도 이러한 이주 농민을 시적 화자로 삼아 시를 쓴 이는 없다.
“신재령에도 나무리벌/물도 많고 땅 좋은 곳/만주나 봉천은 못 살 고장//왜 왔느냐/왜 왔드냐/자곡자곡이 피땀이라/고향산천이 어디메냐 …(<나무리벌>에서)” 나는 김용섭의 논문을 읽고서, 소월이 님 타령이나 하면서 징징 우는 시인만은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