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남천(1911~?)은 원래 평안도 사람이다. 해방 후에는 남로당의 박헌영과 함께 월북했는데, 1953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식민지 시기 소설과 평론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역사소설 <대하>(1939)가 유명하다.
<대하>는 역사소설이라고 말했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 또는 가족의 삶을 당대의 역사적 현실의 변화와 관련지어 그린 ‘가족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개화기시절을 무대로 평안도 성천(成川)의 장사꾼 박성권 집안의 가족사를 그려나간다.
박성권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서자 출신인 ‘형걸’이 중심인물이 된다. 이 젊은이가 어떻게 문명개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근대적 인간으로 탄생하는지, 특히 그가 성장해 가는 초기 과정에 기독교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서북 지역은, 서양 선교사들 사이에서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부를 정도로 개신교가 급속히 왕성하게 전파된 지역이다. 박형걸은 앞서 얘기했거니와 어머니가 첩의 신분이고 따라서 자신은 서출이었기에 여러 가지 차별로 억울함을 겪게 된다.
가령 자신이 연모했던 여인이, 집안의 결정으로 아버지의 정실 소생인 이복동생과 혼인이 정해지자 분해하면서 실의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다니는 중학교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문 선생의 영향을 받고 예배당을 나가면서 새롭게 성장해 나간다.
이 소설 곳곳에 당시 평안도 지방에 들어온 기독교와 관련된 풍경들이 흥미롭게 나타난다. 박성권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는 그녀의 친정부모가 일찍이 기독교 신자가 되었기에, 시집올 때 가져온 ‘성경책’과 ‘찬미책’ 등을 시댁식구 몰래 틈틈이 본다.
그녀는 중학교를 다니는 남편이 교회에 호기심을 갖게 되자 감춰둔 마리아의 성화를 꺼내 들고 “이게 마리아라고 예수 오마니인데, 참 곱게 생겼지요?”하고 얘기해 주자, 남편은 예수의 성화를 보며 “이건 목수 아들인가? 그 텁석부리 말이야.”하고 주거니 받거니 한다.
‘예수 오마니’니 ‘텁석부리’니 하는 말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심지어 주인공 형걸은 기생 부용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 계기가 되는 것이 기생집으로 심방 전도를 하러 나가서다. 형걸이 전도하러 가서 기생 부용과 대화하는 장면을 들어보자.
부용 : 「저 같은 사람을 그처럼 생각들 해주시니 고맙긴 하외다만, 제가 예수를 믿는다면, 어데 (교)회당에 라두 제법 갈 수 있는 몸인가요?」
형걸 : 「왜요? 어데 예수교에서 사람 차별 두는 줄 알우?」
부용 : 「제가 예배당에 가 봐요. 그날부터 점잖은 집 부인네는 오들 않을 겁니다.」
형걸 : 「그래두 할 수 없죠. 예수라는 이는 사람에게 귀천을 가리거나 그렇진 않았으니까요.」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의 양친도 평안도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장로였다. 어머니 이름인 ‘강반석’의 ‘반석’은 모르긴 몰라도 시편의 ‘반석 같은 믿음’이라는 구절에서 가져왔으리라. 예수의 제자 ‘베드로’ 이름은 ‘바위(반석)’을 의미한다.
이러한 외가의 영향 탓이었던지 김일성이 언젠가는 미국 목사들을 북한으로 초청해 만난 적이 있었다. 한 목사가 그의 별장에 초대돼 같이 밥을 먹는데 김일성이 “목사님, 식전 기도를 해 주십시오.”라고 해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일성이 1912년생이니 <대하> 소설에 등장하는 평안도의 젊은 주인공들은 바로 김일성 부모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리라.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었던 서북지역이 지금은 유물론자의 나라가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뜻이 실로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