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문규 Feb 25. 2024

1910년대 개화기 커플의 신혼여행, <추월색>

우리 근대소설은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루>(1906)에서 시작되지만, 당시 신소설 최대의 베스트셀러는 최찬식의 <추월색>(1912)이었다. 초창기 조선의 많은 작가들이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읽어주는 <추월색>을 듣거나 읽으면서 소설이 뭔지를 알고 소설가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추월색>은 신소설이 대체로 그렇듯이, 말이 ‘신(新)’소설이지, 여주인공이 파란만장한 고투 끝에 결혼에 성공하게 되는 고소설식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한 여인이 정혼한 남자와의 결혼을 쟁취하는 과정과 함께 개화기의 새 풍속과 첨단유행이 소개돼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


첫 장면부터 인상적인 게, 여주인공 정임이 동경 우에노(上野) 공원에서 불량배 소년에게 겁탈당할 위기의 순간에서 작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작가 최찬식은 일본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데, 우에노 공원의 풍경을 그럴싸하게 그려낸다.


아마도 사진이나 엽서에서 봤을 법한 풍경을 보고 그렸을 것이다. 우에노 공원의 높고 낮은 누대들의 금벽이 찬란하며, 아름다운 야경에 달구경하러 나온 ‘산보객’들과, 달빛을 안은 불인지(不忍池, 시노바즈노이케) 관월교 돌난간에 여자 유학생 정임이 앉아 있다.  


정임에게 한 조선 청년이 다가오는데 그는, “파나마모자를 쓰고 금테안경을 코허리에 걸고 양복 앞섶을 갈라붙인 속으로 시곗줄이 달빛에 반짝거리며, 오른손에는 반쯤 탄 여송연을 감아쥐고 왼손으로 단장을 들고” 있다. 당시 개화기 멋쟁이들의 차림새를 시시콜콜히 보여준다. 


<추월색>은 작품 마지막까지도 독자의 대중적 취미에 영합하고자 전력을 다 하는데, 가령 천신만고 끝에 결혼에 성공한 주인공 내외는 혼인식을 마친 후 삼일만에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덤으로 그려진다.   


당시 더러 신혼여행을 떠나는 일도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분명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추월색>의 주인공 부부의 신혼여행 행선지는 만주의 봉천(선양)이다. 서울서 그곳을 가려면 먼저 용산과 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 열차를 타야 한다. 


정거장에 나온 신랑과 신부 내외는 나란히 서서 정답게 이야기한다. 신랑은 후록코트에 맥고모자를 쓰고, 신부는 분홍 양복에 땅에 끌리는 치맛자락을 치어들고 옥색 우산을 어깨 위에 높이 들어 신랑과 반씩 얼려 받는다. 서양부부와 같은 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그런데 <추월색>은 주인공 내외의 신혼여행을 오로지 흥미 삼아 그리고만 있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의 행선지가 만주 봉천이다. 그들이 타고 가는 경의선은 원래 일본의 군용 철도로 일본이 러일전쟁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급추진하면서 1904~1906년에 걸쳐 부설됐다. 


신혼 여행지인 봉천은 러일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다. 아닌 게 아니라 <추월색>의 신혼부부는 이 전적지를 따라 여행을 하면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위업을 찬양하고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전사한 일본의 장군과 병사들의 넋을 기린다.         


심지어 이 신혼부부는, 봉천의 전쟁터에 서서 일본은 이 전쟁의 승리로 동양 행복의 기초를 마련하고, 만주 전역에 철도를 부설하고 시가를 개척하여 점점 번화한 도시를 만들어 가니 이는 우리 동양의 ‘황인종’도 차차 진흥돼 갈 조짐이라고 경하해마지 않는다.  


일본은 실제 러일전쟁 후 만주와 동중국지역을 단순히 군사적으로 지배한 것이 아니라, 여행과 관광을 위한 장소로도 개발한다. 아마도 일본 정부는 관광을 이용한 선전 가능성을 세계에서 최초로 간파한 정부일 것이다. <추월색>은  이러한 제국을 선전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압록강을 건너는 다리는 <추월색>이 발표되기 1년 전인 1911년 개통된다. 이로써 한반도 남단인 부산서 프랑스 항구 도시 칼레까지 쭉 운행되는 철도망의 마지막 연결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최찬식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도 기민하게 촉수를 대고 있는 셈이다.


최찬식 집안은 철저한 친일파다. 아버지 최영년은 일진회 총무원이고, <대한일보>도 관계했는데 이 신문은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비난하는 기사도 싣고 보호조약을 지지한 성명도 낸다. 한편 아들 최찬식은 소설을 빌려 일본 제국의 번영을 엉큼하게 보여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남천의 <대하>와 ‘조선의 예루살렘’, 평안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