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다. 그녀는 여성해방문학에도 자의식을 가졌었는데, 소설과 수필 등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이를 실천하고자 했다. 그녀는 동경에 유학하여 미술 공부를 하던 시절 오빠의 친구인 케이오오대의 최승구와 열렬한 연애를 했다.
최승구(소월)는 주요한, 김억과 더불어 1910년대 유명 시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최승구는 25세에 폐병으로 사망하는데, 당시 21세였던 나혜석은 연인을 잃고 일시적으로 발광상태에 이른다. 이후 그녀는 죽은 애인을 가슴에 묻고 25세 되던 해, 총독부 관리인 김우진과 결혼한다.
김우진은 상처한 남자이고 전실 딸도 있었는데, 나혜석에게 열렬히 구애하여 결혼에 이른다. 나혜석은 당시로서는 과년한 처녀였던 데다, 특별한 매력은 없지만 자상하고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김우진을 남편으로 선택했던 듯싶다.
당시 이들의 결혼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신혼여행은 더 인구에 회자됐던 것 같다. 염상섭은 이 둘의 결혼과 신혼여행 이야기를 자신의 중편소설 <해바라기>(1923년)에 담았다. 물론 등장인물에 실명을 사용하지는 않았고 중간중간 허구를 끼워 놓는 식이었다.
나혜석의 결혼식은 교회에서 목사의 주례로 치러졌는데, 소설에서는 색시가 결혼식을 치른 후 시댁식구들에게 치르는 폐백 의식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구체적 진위야 알 수는 없고 당시 신여성의 행태를 마땅찮아했던 염상섭의 시선이 개입된 것 같다.
신식으로 치러지는 결혼식이라고 참석을 하지도 않은 시아버지는 신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못마땅해한다. 특히 첫날밤을 집이 아닌 호텔에서 치르겠다고 해서 시아버지는 크게 불만스러워한다. 문제는 첫날밤을 지내고 다음날 떠나는 신혼여행의 행선지였다.
당시 신혼여행지로 동래온천이나 함경도 석왕사, 강원도 금강산 등이 있을 것이다. 신부가 가고자 한 곳은 예상 밖의 전라도 남녘 끝 고흥의 섬이었다. 그곳은 신부의 옛 애인 최승구의 고향이자 그의 묘가 있는 곳이다. 그곳을 가서 최승구의 묘비를 세우고 오자는 것이었다.
나혜석에게 그곳은 초행길은 아니었다. 최승구가 죽기 직전 그의 가족의 간청으로 처녀시절 그곳을 이미 방문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혜석의 신혼여행 사연은 지금 봐도 파격적(?)인데 페미니즘 선각자로서 향후 그녀의 운명이 평탄치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갖는다.
2.
나혜석이 1세대 여성작가라면 백신애는 1930년대 등장한 2세대 여성작가다. 나혜석이 주로 신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2세대 여성작가 즉 백신애, 강경애, 박화성 등은 사회주의 관점에서 가난한 계급의 여성을 소설의 주요한 등장인물로 삼았다.
백신애는 경상도 영천지방 부호의 딸이었지만,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오빠의 영향으로 일찍이 그쪽에 눈을 떴던 것 같다. 사회주의 여성단체에서 활동도 했고 구체적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 불법 잠입했다가 고초를 겪기도 한다.
한때 일본에 가서 연극을 공부하며 배우를 지망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귀국하여 당시로서는 만혼인 25세의 나이에 은행 지배인 역의 일을 하는 이와 대구 공회당에서 신식 결혼을 치른다. 이후 그녀는 「슈크림」(1935)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신혼여행 이야기를 썼다.
그녀가 신혼여행을 간 곳은 일본을 대표하는 닛코(日光) 관광지다. 눈 내린 천 길 만 길 골짜기를 자동차로 오르며 내려다보는 호수와 정상의 폭포는 무척 환상적이라 당시 그곳서 정사(情死)를 감행하는 이들도 있었나 보다.
그러나 백신애는 풍광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고 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슈크림을 먹기는커녕 보기도 싫어졌다는 다소 엉뚱한 얘기를 한다. 닛코 역에 도착한 부부는 끽다점(커피숍)을 갔는데 백신애가 슈크림을 주문했나 보다.
남편이 “그것이 무슨 맛이 있어?”하고 묻는 걸, 백신애가 “나는 퍽 즐겨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날 밤 호텔에는 없다는 슈크림을 일부러 사람을 시켜 릿쿄 역까지 가서 한 상자를 사 오게 하고선 “자- 실컷 먹으시오. 일부러 당신을 위해 먼 데서 사 온 것이니”하고 권했다고 한다.
정성을 생각해 몇 개를 먹고자 했는데 체면 차리지 말고 먹으라고 자꾸 권하는 바람에 한 자리서 열 개를 계속 집어넣었더니 지금도 슈크림 하면 머리가 흔들린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과 싸울 때 “무턱대고 먹으라고만 권하는 것은 야만적이아요.”라는 말을 늘 들먹였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슈크림이라는 것이 분위기 있는 찻집에서 커피와 더불어 한 개를 먹을까 말까 해야 맛도 있는 것이지, 한 상자를 시켜 놓고 밥을 먹듯이 배불리 먹으라고 했으니 백신애의 남편이 센스가 없는 건지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백신애는 자신의 어느 소설 작품에서 "나의 결혼은 언젠가는 반드시 떨어지는, 하늘을 향해 돌멩이를 던진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그 자세한 내막을 얘기할 수는 없고 백신애는 이후 별거인지 이혼인지를 하고 얼마 안 있어 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