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문규 Mar 24. 2024

개화기 시대 단발 스케치, 남자가 한다고 여자도!?

1930년대 후반 가족사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사소설이 유행한다. 가족사소설이란 개인 및 가족의 삶을 당대의 역사적 현실의 변화와 관련지어 그리고자 하는 특징을 갖는다. 최참판 집안의 성쇠를 그린 박경리의 대하역사소설 <토지>도 가족사소설이라 부를 수 있겠다.  


식민지 시기인 30년대 후반 가족사 소설이라는 장르가 유행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펄 벅의 <대지>(1931)가 1938년 노벨상을 받으면서 국제적으로 가족사소설이 유행하게 된 데 따른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시기 대표적 가족사 소설로는 김남천의 <대하>(1939), 이기영의 <봄>(1940), 한설야의 <탑>(1940)등이 있다. 이들 소설은 개화기 시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여러 풍속들이 그려지는데 그중 이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청년학생들의 단발 사건이다. 


원래 단발령은 1895년에 시작되는데 초기에는 국민들의 저항 내지 반발이 격심했다. 그러나 위의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단발 사건들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인 1900년대 중반 남학교에서 있었던 단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오면 단발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훨씬 수그러들지만, 아직도 많은 봉건적인 보수 세력들은 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작품에 등장하는 청년 학도들의 단발은, 이러한 봉건수구 세력에 저항하고 문명개화를 실천코자 하는 행동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대하>에서는 서자 출신인 주인공이, 아버지의 결정으로 자기가 연모하던 여인이 정실 소생인 이복동생에게로 시집을 가게 되자, 봉건적인 가족제도에 대한 반발심으로 학교에서 친구와 함께 삭발을 감행한다.  


학교 사환이 “똑딱거리며 이가 드문드문 빠진 기계“로 이들 머리를 깎아주는데, 이 장면은 요즘 시위 주도자들이 하는 삭발식의 비장한 장면을 연상케도 한다. ‘청년학도‘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삭발하는 장본인 주위에 학우들이 모여 창가를 부르며 격려하고 만세도 부른다.


왔도다. 왔도다. / 봄이 왔도다./새벽 맞는 이 산천에/ 봄이 왔도다. (…) 

무쇠골격  돌 근육/소년 남자야/문명의 정신을/잊지 말아라 

우리는 덕을 닦고/지혜 길러서/문명의 선도자가/되어봅세다.    


그러나 아직도 이 시기 단발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찮았다. 단발하는 이들이 일진회 같은 친일파들이나 주로 하는 짓이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또 양반 출신 학생들은 아직도 옥관자를 붙이고 상투 위에 쇠뿔관을 쓰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에서는 일본인 교사를 중심으로 개화한 교직원들이 주도해 학도들을 한 방안에 가둬놓은 후 선생들이 감췄든 이발 기계와 가위를 들고 닥치는 대로 머리를 자른다. 그러나 학도들은 정작 머리를 깎은 후에는 교모를 쓰고 나서면서 이를 자랑스레 생각한다. 


<탑>에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단발동맹’을 맺어 머리를 깎자, 주인공 학생의 할머니는 초상이 난 것처럼 울고불고한다. 할머니는 단발을 “천주학(교)이나 해 먹는”이들이나 하는 짓으로 사갈시 하고, 손자 머리에 포대기를 씌우고, 머리를 뜨물에 씻겨 다시 쉬 자라기를 바란다.


이들 소설에서 개화기의 단발은, 봉건적 수구세력에게는 부정적인 것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문명개화와 진보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단발이지만 여성의 단발도 그와 마찬가지였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개화기를 훨씬 지난 후인 1920~30년대에까지도 여성의 단발은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다. 근대 초기 남성에게는 단발이 강제되고 예찬되지만, 여성의 단발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여성단발은 서양의 못된 풍조나 따르는 비주체적이고 심지어는 퇴폐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1920년대 식민지 현실을 뛰어나게 묘파한 작가 염상섭조차, 여성의 단발을 시대의 풍조를 맹목적으로 좇고 이러한 풍조에 맞춰 여성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여성들이 단발을 마치 영예스러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맹렬히 비난한다.  


염상섭은 어느 시대라도 “남녀의 별(別)”은 있어야 한다며, 남성이 단발을 한다고 여성도 단발을 하는 것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염상섭이 생각한 여성의 아름다음이란 뭘까? 당연히 가부장제가 강요해 온 전통적 여인의 모습이었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식민지 시대 두 페미니스트의 신혼여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