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문규 May 19. 2024

<단종애사>와 <임꺽정>, 역사란 무엇일까?

학부 시절 이념서클을 들어갔던 친구가 있다. 그 서클의 선배는 처음 들어오는 후배들마다 앉혀놓고 “역사의식을 가져라!”라고 일장연설을 했다고 한다. 친구는 역사의식을 갖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를 물어봤다고 한다. 


그 선배는, “역사의식이 없으니 그 따위 질문이나 한다.”면서 호통을 쳤다고 한다. 친구가 농반진반으로 전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당시는 역사의식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대학총장도 기념식사에서 학생들에게 역사의식을 가지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소설문학에는 역사를 소재로 하는 역사소설 장르가 있다. 역사소설은 이미 중세 때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근대적 역사소설은 중세 때의 역사소설, 가령 중국 명대의 <삼국지연의>나 <수호전>, 조선 시대의 <임진록>‧<임경업전>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근대 역사소설은 중세의 역사소설과 달리 ‘역사의식’을 드러낸다. 또 역사의식이라니? 나 역시 이를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역사소설 <전쟁과 평화>(1869년)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틈틈이 역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톨스토이는 역사의 목적은 역사의 운동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든 절대로 그 자체가 시작인 것은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다. 언제나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건에서 줄곧 흘러나온다. 다시 말해 역사가 전개하는 과정 속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정지돼 있거나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라며 동적(動的)인 역사관을 강조한다. 나는 톨스토이와 카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을 근대소설에서의 역사의식이라 부르고자 한다.  


1928년 <조선일보>에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이 연재된다. 이에 질세라 <동아일보>는  이광수의 역사소설 <단종애사>를 연재한다. <단종애사>가 중세시대의 역사로맨스를 닮았다면, <임꺽정>은 근대적 의미의 역사소설이라 말할 수 있겠다. 


<단종애사>는 제목서 엿볼 수 있듯이 단종의 비극적 생애를 그린다. 어린 왕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 일파와 이에 맞서 단종을 지키고자 하는 사육신의 대결을 통해 단종을 받든 충의지사와 수양을 둘러싼 불의도당들을 대비적으로 그린다. 


<단종애사>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보다는 개개 인간들의 충이나 인정과 의리를 강조한다. 모든 사건이 사육신 편에서 서술되며 등장인물들은 극단적인 선인 대 악인의 대립으로 설정된다. 앞서 중세의 역사로맨스 <삼국지연의>도 넓은 의미에서는 그와 비슷하다.


<삼국지연의>는 유비‧관우‧장비가 형제결의를 맺는 “도원결의”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의리’인데, 가령 관우는 의리의 화신이다. 조조는 적장 관우에게 자신의 애마 적토마를 주면서까지 그를 신하로 삼고자 하나, 관우는 의리를 좇아 자신의 주군 유비에게로 돌아간다. 


이 돌아가는 장면이 <삼국지연의>의 하이라이트다. 관우가 죽고 나면 읽을 맛이 싹 사라져 버린다. <삼국지연의>는 당대의 역사적 사실보다는 역사적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웅들의 의리와 충의 세계가 중요하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16세기 명종 때 황해도‧경기 지방에서 활동하다 40세의 나이로 포살 된 대적 임꺽정 일당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은 임꺽정이 태어나면서 얘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그 이전 네 차례의 큰 사화가 일어났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임꺽정>의 주인공은 ‘임꺽정’ 당사자라기보다는, 임꺽정이 살았던 시기의 ‘역사’가 실제 주인공이다. 임꺽정이 도둑으로 활동한 시기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조선전기 사회가 흔들리면서 결국엔 16세기말 임진왜란으로 가는 도정에 놓인 시기다. 


역사소설 <임꺽정>은 바로 이 시기에 왜 이러한 큰 도둑의 무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역사적 필연성, 즉 16세기 사회적 모순의 표출이라는 역사의 객관적 발전 법칙을 보여준다. 소설이라 법칙이 겉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나, 이를 읽어내는 것이 <임꺽정>의 묘미다. 


톨스토이는 역사에서, “영웅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며, 오로지 인간들만이 존재해야 한다.”라고 했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그 시대가 낳은 한낱 도적이자 무지한 하층민이다. 이와 달리 황석영의 <장길산>에서는 도둑 ‘장길산’이 ‘영웅호걸’로 그려진다. 


포스트모던 역사소설에는 <다빈치 코드>와 같은 역사스릴러, <칼의 노래>와 같은 뉴에이지 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와 같은 대체역사소설도 있다. 이들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보다는, 역사를 빌려 작가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는 역사소설이다.


<단종애사>의 이광수(좌)와 <임꺽정>의 홍명희


매거진의 이전글 <장한몽>과 <눈물>, 돈, 사랑 그리고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