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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n 09. 2024

프라하 스트라스니체 묘지 정류장을 떠올리며

프라하 카렐대학교 한국학과에서 안식년을 지낼 때 처음에는 학교 기숙사에 잠깐 있었다. 기숙사는 스튜디오 룸이라 그곳에서 일 년을 지내기가 너무 협소하고 불편해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국 교민에게 부탁해 아파트를 소개받았다.  


아파트는 학교가 있는 프라하 시내서 트램으로 한 2~30분 정도 되는 외곽에 있었다. 신택지로 개발된 곳에 위치한 새로 지은 아파트였다. 우리는 10층 정도 되는 아파트의 1층에서 월세로 살았다. 전기세, 물세 등을 포함해 다달이 100여만 원 넘게 내고 산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으로 이사 와서 거의 한 달 가까이 되도록 우리 부부는 집 건너편이 시립 공동묘지이자 화장터인 줄을 까마득히 몰랐다. 집 앞 말고도 그곳 일대가 옛날부터 여러 군데 공동묘지들이 있어 왔던 곳이다. 심지어 유대인들의 신공동묘지도 있다. 


시립 공둉묘지(위), 공동묘지 입구에서의 장례식 장면


올해로 세상을 떠난 지 딱 100년 되는 유명 소설가 카프카도 거기 묻어 있다. 공동묘지들은 긴 담벼락으로 가려져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집 앞서 승차하는 트램 정류장인 ‘스트라스니체 묘지’ 정류장을 비롯해 인근 정류장들 이름이 모두 ‘묘지’였다. 


‘올산스케 묘지’ 정류장,  ‘비노흐라드스케 묘지’ 정류장,  ‘메지 묘지’ 정류장 등등. 어쩐지 우리 동네에 유난히 꽃 가게가 많고 가게마다 양초들을 팔고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유대인들의 신공동묘지와 카프카 묘지를 알리는 이정표(위), 제일 오른편이 카프카의 묘지


모든 의문이 다 풀리고 나니 공동묘지 입구에 놓인 대형 화로에 횃불이 타오르는 날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붐비고 장례가 치러지는 날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한인 부동산 사장님이 이러한 사실을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건 아닐 것이다. 


집주인이었던 체코 아저씨가, 우리 집에서 건너다 보이는 고급아파트 꼭대기에 체코의 유명 연예인이 산다고 자랑했다. 그 층에서는 아침 자고 일어나면 묘지 전체가 환히 내려다보일 테니 묘지와 집값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공동묘지 지구에서 살다 보니 낮 시간이나 공휴일에 트램을 타면 묘지를 찾는 노인네들이  많이 있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를 끌고 타는 노인들도 많았다. 동유럽 사람들이 서유럽 사람들과 얼굴은 비슷하지만 표정은 좀 화난 듯하고 뚱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다.


노인들은 더 그래 보였다. 나는 트램서 노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순간순간 돌아가신 나의 외조부와 외삼촌들 얼굴이 떠올랐다. 외가 식구들이 이목구비가 크고 두렷두렷 해서 서양사람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막상 체코 노인들을 보니 진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은 우리 어머니를 스페인사람 같다고 하셨다. 체코 할머니들을 보니 장인 말씀이 아주 농담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사람 같은 어머니는 내가 체코에 있을 당시 85세셨다. 그때만 해도 인천서 전철을 타고 서울 동창 분들을 즐겁게 만나러 다니셨다.


지금은 94세. 당신 홀로 그렇게 씩씩하게 잘 지내던 양반이 얼마 전 치매가 와 우리 집에 와 계시다가 결국은 요양원으로 모시게 됐다. 매주 면회를 가서 그런지 아직 우리는 알아보지만 그만 시간의 흐름을 놓쳐버리고 오늘을 어제 같이 어제를 오늘 같이 살고 계시다. 


이웃에 모신 장모님은 그 보다 한 살 위인 95세! 카톡과 문자도 하지만 무릎관절을 못 써, 기다시피 하며 짓던 텃밭농사도 결국은 포기하고 주간보호센터를 다닌다. 두 분 다, 가야 할 때를 모르고 구차하게 너무 오래 산다는 말을 입에 달고 하셔 듣는 우리를 민망하게 한다.   


십 년 전 프라하의 묘지 정류장서 트램을 타고 내리면서 매일 죽음과 마주치고 많은 죽음들을 봤다. 그때만 해도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설사 있다 치더라도 모른 척하며 살아간 것 같다. 죽음은 영원한 평화와 안식처라느니 낭만적 말이나 뇌이면서 말이다. 


내일모레 나도 일흔이다. 내가 늙어서가 아니고 이 나이에 백 살을 바라보는 두 어머님을  면회도 가고 병수발도 하다 보니 누구 말대로 죽음의 길은 멀고도 가깝다. 비관적으로 생각해서는 아니고, 요즘은 내게 남은 날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살게 되는 나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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