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은 물론이고, 그 한참 후인 벨벳혁명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던 1990년대 초까지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한 나라였다. 체코서 일 년 살며 슬로바키아 여행도 다녔는데, 두 나라는 헤어진 것에 대한 별 유감없이 각자 잘 살고 있는 듯 보였다.
슬로바키아 여행을 같이한 외대 체코어과 교수 말에 의하면, 두 나라의 언어는 90% 이상이 같다고 한다. 인사말 등 일상어에서 사소한 차이들이 있기도 하다. 내가 체코인들 앞에서 그런 차이가 나는 슬로바키아 말을 일부러 쓰면 아주 재미나는 사람이라는 듯이 쳐다보곤 했다.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을 구별하긴 어렵다. 단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체코 여자 열 명 중 한 명은 미인인데 슬로바키아 출신이란다. 거꾸로 슬로바키아 여자 열 명 중 한 명은 인물이 없는데 체코 출신이란다. 트럼프의 이혼한 첫 부인이 아마 슬로바키아 출신일 거다.
실제 슬로바키아를 여행하다 보면 그쪽 여인들이 미인이라는 생각은 든다. 체코와 달리 슬로바키아는 오랜동안 헝가리 지배를 받았고 오스만 터키의 침략도 잦았다. 여러 민족이 섞이다 보니 혼혈 출신이 많아 미인이 많은가 생각도 해보지만, 그건 순전히 내 짐작이다.
외세의 침입이 잦아 슬로바키아에는 고성이 많다. 남한 땅 절반 크기 밖에 안 되는 슬로바키아에 무려 성이 100여 개다, 이곳이 오스만터키를 막는 유럽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다. 군사적 용도의 성이었기 때문에 체코의 성들과 달리 현재는 폐허로 된 성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두 나라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건 자연지형이다. 체코는 대부분 평탄한 평원지역이다. 슬로바키아는 이 나라에서 루마니아까지 가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북부 지역을 가로지른다. 어떻게 보면 산골 많은 슬로바키아의 풍경이 한국의 풍경에 더 가깝다.
여행을 하다 보면 체코가 슬로바키아보다 좀 더 서유럽에 가까운 나라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체코에서는 오히려 유로 화폐를 쓰지 않는다. 반면 슬로바키아는 유로를 쓰면서 유럽의 주류로 편입하여 자본주의에 적응코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두 나라 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인연이 깊다. 체코에는 현대자동차, 슬로바키아에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다. 슬로바키아는 자신의 나라 이름 끝이 ‘슬로바-키아’라서 한국의 ‘기아’ 자동차가 들어왔다고 농담 삼아 말한다.
기아가 있는 슬로바키아의 질리나와 현대가 있는 체코의 오스트라바, 이 두 도시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 이 지역이 유럽의 한국 자동차 산업의 전진기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당연히 종족, 전통, 문화적 차이가 있다. 체코는 옛날에 보헤미아 왕국이고, 슬로바키아는 모라비아 왕국에 속했다. 종교에서도 체코가 상대적으로 개신교적 전통이 강하고, 헝가리 지배에 있었던 슬로바키아는 가톨릭교회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양자 모두 독일과 러시아 제국 양쪽의 위협을 피하고자 비교적 자유화된 합스부르크 제국 안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며 은신과 안정을 추구해 왔다. 어떻게 보면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평화롭게 공존해 왔기에 현재도 그것이 유지되는 것 같다.
1차 세계대전 후에는 민족자결주의가 부상하고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가 비로소 독립을 한다. 당시 체코의 독립을 이끈 초대 대통령 마사리크는 어머니가 체코인이고 아버지가 슬로바키아인이라 양자의 간극을 쉽게 좁힐 수 있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대부분 농민이었던 슬로바키아인들과 도시적이고 경제적으로 앞선 체코인들은 애초부터 서로에 대해 애정이 거의 없었다. 단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된 국가를 이뤄내기 위해선 체코인들 자체만으로는 힘에 부쳤기에 슬로바키아와 힘을 합친 것이다.
1968년 체코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 일컫는 반(反) 소련 운동이 일어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지향한 이 민주화운동은 소련 군대의 발 빠른 진압으로 무산된다. 그러나 실제 이 운동은 1956년 헝가리 봉기처럼 단순히 소련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건 아니다.
이 시기 체코슬로바키아와 소련의 우호관계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단 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정부가 수립되던 시기, 소련의 지원을 받은 체코 공산당이 주도권을 쥐면서 슬로바키아 공산당이 소외되고 이들의 불만이 쌓여 왔던 것이다.
1968년 슬로바키아 출신의 개혁파 두브체크가 공산당 제1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과거 슬로바키아 공산당의 누적된 불만이 반소운동으로 이어진다. 즉 프라하의 봄은, 그것이 전적인 이유라 말하긴 어렵지만, 그 발단은 체코 공산당과 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알력에 있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체코니 슬로바키아니 하는 민족의식은, 이십 세기 근대에 들어와 민족주의가 성행하면서 뒤늦게 부각된 셈인데, 그게 무슨 그런 큰 의미가 있냐 싶은 생각도 든다. 나에겐 여행 중 만난 슬로바키아 여인이 체코 여인보다 미인이었다는 추억만 계속 맴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