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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시, 오-매 단풍 들것네

by 양문규

1970년대 중반 대학시절 제주도 여행을 위해 저녁 7시 서울 용산역서 출발하는 여수행 전라선을 탔다. 서대전역서 한참을 쉬었다가 목포로 가는 호남선을 갈아탔다. 간이역까지 어느 한 역도 빼놓지 않고 둘렀다 가는 완벽(?)한 완행열차였는데 서울서 목포까지 13시간 걸렸다.


그 후 최종 목적지인 제주도를 가려면 목포 항구에서 또 7시간 가는 배를 타야 했다. 여기서 제주도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호남선 열차에서의 추억이다. 야행열차에는 모기가 득실거려 새벽 4시 돼서야 간신히 눈을 붙였다. 아주 잠깐을 자고 났는데 곧 해가 떠올랐다.


인천이 고향인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광활한 호남평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벌판 끝 지평선으로 부챗살 모양의 햇살이 퍼져나가는데 장관이었다. 기차는 모든 간이역을 두르는데, 매 역마다 장에 가는 건지 푸성귀 가득한 대야를 머리에 얹은 아낙네들이 차 칸에 올라탔다.


그이들은 승객들로 만원이 된 기차 안을 보면서 ‘오매!’, 움머!‘, ’워메!‘ 하며, 놀래하는 전라도 식 감탄사들을 내뱉었다. 그 감탄사의 억양과 음색이 노래 속 멜로디처럼 들렸는데, 이를 오선지에 옮겨 적어 놓고 싶을 정도였다.


호남선 열차서 이 ‘오매’ 소리를 실제로 듣지 않았다면, 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 들것네」의 ‘오매’라는 말속에 담긴 놀라움과 감탄의 정을 잘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 「오-매 단풍 들것네」의 누이는 추석을 얼마 앞둔 가을 이른 아침, 마당으로 나와 장광의 장독을 연다.


바람이 쌀쌀히 불면서 골붉은 감잎 하나가 날아와 장독으로 떨어진다. 푸르렀던 감잎 색깔이 어느 사이 이렇게 변했다니! 이제 단풍도 곧 울긋불긋 들기 시작하겠구나! 성큼 다가온 계절에 설레고 놀란 누이의 마음을 화자는 그리움 속에 담아본다.


이 시를 그냥 이런 식으로 풀어서 얘기해 봤지만, 김영랑 시는 의미보다는 노래로 들어야 한다. 그냥 이 시에서는 시집갈 나이가 돼 얼굴이 한층 곱게 핀 누이가 놀래하는 ‘오매’ 소리를 그리움을 갖고 들으면 된다. 청량한 가을 공기 속에서 단 남도 처녀의 목소리로.


김영랑의 처녀 시집인 『영랑 시집』(1935)에는 원래는 작품 제목이 따로 없고 작품에 일련번호만 붙여 53편의 시를 실었다. 시의 내용보다는 정서적 울림을 중시한 작가의 의도라 하겠다. 영랑은 시의 음악성을 위해 전라도 사투리를 활용하는 등 소리를 갈고닦는다.


‘오매’를 위시해 영랑시의 주옥같은 언어들, ‘아슬한’, ‘조매로운’, ‘하잔한’, ‘소색이는’, ‘도른도른’ ….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도,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다리고 "가 아니라, “기둘리고"라고 소리를 부드럽게 굴려, 소리와 의미가 하나가 되게 한다.


시를 ‘회화시’와 ‘음악시’로 굳이 구분해 본다면, 김영랑이나 김소월 등은 말의 음악성을 강조하는 음악시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지용의 경우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 동인이었지만 김영랑과는 대조적으로 말의 회화성에 의존하는 회화시를 쓴다.


그래서 영랑의 시가 청각적이고 음악성(시간성)과 리듬을 강조하면, 지용의 시는 시각적이고 회화성(공간성), 형태를 강조한다. 영랑이 주정적이고 감상성을 띤다면, 지용은 지적이다. 영랑이 전통세계, 자연, 전원을 소재로 한다면, 지용은 상대적으로 도시적 감수성이 두드러진다.


요컨대 영랑의 시가 전통적 서정시라면, 지용의 시는 소위 모더니즘(이미지즘) 시다. 영랑, 지용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게, 두 시인은 우리 현대시사의 양대 산맥이다. 이후 청록파의 박두진은 지용을, 박목월은 영랑을 따른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의 열망은 음악처럼 되는 것이라 했다. 영랑 시는 음악이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제.//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엇머리 자저지다 휘모라보아.//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인생에 흔치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김영랑, 「북」(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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