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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l 14. 2019

미국인들의 친절!!??

미국 사람들이 제일로 마음에 드는 건, 아무한테나 ‘하이(Hi)!’ 하며 인사를 건네는 점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나대거나 경박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가 가벼운 사람이다 보니 이 하이가 체질에 딱 맞는다. 어눌한 영어와 달리 나는 이 하이만큼은 화려하게(?) 구사했다. 아내로부터는 내가 유독 젊은 여자에게 이 ‘하이’를 적극적으로 한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였다.

 

하이 말고도 미국 여행을 할 때 오다가다 만난 미국인들의 끝 모를 친절은 늘 감격이었다. 언젠가 시간을 딱 대서 가야 할 곳이 있는데 위치를 몰라 급한 나머지 무슨 스낵 음식점에 들어간 적이 있다. 물어볼 적당한 사람도 없어 종업원 아가씨에게 다짜고짜로 물어보았다. 식당 안에는 손님들도 더러 있고, 아가씨는 일하는 중이었음에도, 내 질문을 받더니 주인에게 가서 뭐라고 보고하고는 일부러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와서 친절히 약도를 그려주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옆에서 식사 중이던 손님이 주의 깊게 듣고 있더니만 ‘그렇게 가르쳐주면 알아듣겠느냐’면서, 먹던 것도 멈추고 약도를 다시 고쳐 그려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르쳐 준 대로 하라고 몇 번을 신신당부했다. 웬 오지랖? 물론 대도시 사는 사람들이 이러진 않을 거다. 언젠가 뉴욕서 하필이면 정신 나간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봤다가 할머니한테 도통 앞뒤가 안 맞는 호통을 받고, 아내한테도 사람 골라가며 물어보라고 이중으로 혼난 적이 있다.  


그러나 여행 중에 만난 이들 대부분은 길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자기 차로 가서는 큰 지도, 작은 지도 등 각종의 지도를 꺼내 와 설명을 해준다. 그때는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였다. 일행이 있으면 자기들끼리 모여서 회의(?)까지 열고 옥신각신하다가 최종 의견을 주기도 했다. 이 정도면 물어본 게 송구스럽고 민망할 정도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도 이구동성으로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탄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러한 친절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외국인들을 대할 때 보여주는 보편적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인의 친절은 뭐라 할까 그들의 발달된 시민적 도덕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문제인 듯싶다. 디즈니랜드에서 표를 구입할 때의 일이다. 매표창구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창구마다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그런데 우리 줄만 그 길이가 유독 줄지를 않았다. 매표창구에서 손님과 매표원 사이에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싸우고 있다기보다는 아예 다잡고 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뭐라 하는 자들이 없었다. 불평의 소리가 터져 나오거나 누군가가 욕설 내지 고함을 터뜨렸을 법도 한데, 기다리는 사람들은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여행 초기에 슈퍼마켓에서 여행자 수표를 사용할 일이 생겼는데, 운전면허증이 없어 종업원에게 여권을 제시한 적이 있다. 뚱뚱하고 맘 좋게 생긴 종업원은 이 여권을 조회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시간을 엄청 허비했다. 그럼에도 그는 나에게 매우 미안해하면서 그것 때문에 땀을 더 흘려댔다. 더 민망했던 것은 계산대 뒤에서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늘 궁금했는데, 역시 법을 공부한 판사나 변호사 양반들이 이치에 맞게 설명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문유석 판사도 나처럼 미국에 연수를 갔다 온 적이 있나 보다. 그는 미국서는 ‘정성’, ‘성실’ 같은 평범해 보이는 가치를 우리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자기 일을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남의 일도 존중한다. 가령 아무리 바빠도 민원 창구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창구에 자기 서류를 들이밀며 빨리 해 달라고 빽빽 소리를 지르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다. 1미터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다가 다음 사람 오라는 허락이 떨어져야 앞으로 간다. 일하는 사람이 왕이다. 일하는 사람이 기다리라면 기다려야 하고, 안 된다면 안 되는 거다. 그런 문화가 어느 일을 하든지 자기 일과 자기 권한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한다. 


송호창 변호사는 이를 미국이 시스템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라는 관점과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미국인은 자신들의 안전과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 헌법 정신을 지켜주는 것은 몇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시스템과 제도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시스템을 지킨다는 의미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정해진 룰(rule)에 따라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높은 시민의식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미국인의 친절이란 단지 개인적 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일정한 수준에 올라간 시민적 또는 사회적 도덕과 관련지어 얘기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미국인들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위해 캐나다 지역으로 들어갔다 나온 적이 있다. 당시는 폭포가 이미 얼어붙은 11월 하순 경이어서 미국으로 돌아올 때 관광객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고압적인 자세의 출입국 관리는 처음 보았다. 차 트렁크를 열어보라고 하더니, 왜 거주지가 유타이면서 차는 캘리포니아 차인가를 큰 소리로 노기를 띠며 물어보았다. 렌터카 업체서 주는 대로 받아온 차인데 말이다. 문제는 추상같은 질문을 한 것과는 달리 내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무래도 국경지역을 오가는 동양인들에 대한 관리들의 무시가 작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적 시선은 여기저기서 느꼈다.  


미국 있을 당시 9‧11 테러가 일어났는데, 그 여파로 비행기 탑승객에 대한 보안검사가 엄청 강화됐다. 미국의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할 때, 분명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그랬으리라 짐작되는 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슬림 차림을 한 사람들과 함께 승객들로부터 따로 불려 나와서 소지품 검사를 단단히 다시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반의 절차들이 우스웠던 건, 이후 귀국할 때 미국의 몇 개 공항을 거치면서도 적발되지 않았던 과일칼을- 물론 우리도 그걸 들고 다녔는지도 몰랐다. - 한국에 들어오기 일보 직전인 일본 나리타공항에서야 적발당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뭔가 합리성을 추구하면서도 다소 과시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고, 법질서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잘못된 권위에 맹종하면서, 본질적인 문제에는 무관심 해 한다. 인권에 관해 좋은 글을 많이 쓴 조효제 교수는 미국을 “놀라운 유능함과 가소로운 무능함이 공존하는 나라”라는 알 듯 모를 듯싶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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