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절 좌익 쪽의 대표적 문학평론가였던 임화는, 민족주의 쪽 염상섭의 문학을 백안시했음에도, 염상섭의 중편소설 「만세전」(1923)만큼은 1920년대 사실주의 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높이 평가한다.
나 역시 「만세전」은 1920년대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본격적인 리포트는 아닐지라도 글자 그대로 독후감 수준의 과제물을 꼭 받아봤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받은 독후감은 좀 기대에 걸맞지 않은 내용들이 있고는 했다.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만세전」의 주인공인 동경 유학생 ‘이인화’에 대해 분노를 쏟아낸다. 이인화는 당시 조혼의 관례에 따라 열세 살 되던 해 두 살 연상인 여자와 결혼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는 결혼한 지 이 년 후 일본으로 도망치다시피 유학을 떠난다. 어느 날 일본에서 고국의 아내가 해산 끝에 병을 얻어 죽음에 임박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이인화는 이 소식에 아내에 대한 연민과 자책감을 느끼면서도, 애정은 조금도 없다는 사실에 우울해한다.
그래서 혼자 중얼거린다. “아직 죽지는 않은 게로군! 죽기 전에 한 번 대면이라고 시키려구. 죽었으면 나 안 가기로 장사 지낼 사람이 없나?”라는 식의 반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주인공은 우울함에서 탈출하고자 동경의 카페 여급 시즈코와 유희적 연애를 벌이기도 한다.
학생들은, 아내가 죽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이러한 패륜적 행태를 벌이는 것에 대해 분노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분노를 참다못해, 이런 잘못된 지식인들 때문에 우리가 식민지 통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다소 순진한(?) 주장에 이르기까지 한다.
작가인 염상섭은 주인공을 대체로 비난하듯이 그렸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가령 이인화는 아내의 초상을 치르기 위해 동경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관부연락선과 경부선 열차 등 곳곳에서 마치 ‘로드무비’의 장면과도 같이 “흰옷 입은 백성의 불쌍한 운명들”을 목격한다.
작가는 이들 역시 비웃고 혐오를 드러낸다. 그러나 주인공은 점차 이들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식민지 현실 속 지식인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묻는다. 이 점은 그런 뼈저린 각성이 없는 춘원소설의 계몽적 주인공들과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작가로, 「만세전」의 주인공 이인화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김우진이라는 이가 있다. 김우진은 전라도 부유한 집안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해 신극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한국의 신문학을 개척해 나간다.
그는 당시 어느 누구도 필적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 위치에서 유럽의 극문학을 소개하고 번역한다. 체코로 안식년을 갔을 당시, 체코인 한국학자가 김우진이 체코의 대표적 극작가 카렐 차페크를 한국에 소개한 내용을 비교문학적으로 고찰한 연구를 확인할 기회도 있었다.
문학 천재 김우진이 일본으로 유학 가서 공부할 당시, 동경으로 역시 유학 온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윤심덕은 김우진과 달리 평양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나, 조선총독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산발돼 우에노 음악학교로 공부를 하러 온다.
윤심덕은 홍난파, 채동선 등 많은 유학생들과의 스캔들도 있었지만 유부남 김우진에게로 점점 사랑에 빠진다. 김우진이 결혼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에게로 기울어져 가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윤심덕은 음악학교 졸업 후 가난한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역시 음악공부를 하는 동생의 미국 유학비 마련을 위해 그녀는 클래식 성악을 포기하고 경성방송국에 출연해 대중가수로 활동하면서 스폰서 격인 장안의 부호들과 스캔들을 일으킨다.
1926년 자신이 작사한 「사의 찬미」 레코드 취입을 일본 대판서 하고 그곳서 김우진과 만나 귀국하던 중, 관부연락선상에서 현해탄 바다에 동트기 전인 새벽 손을 붙잡고 동반 자살한다. 「사의 찬미」는 그 후 매스컴에 의해 대중적 선풍을 일으키며 음반 판매에 화약고를 터뜨린다.
김우진은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조강지처와 자식이 있고 이혼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윤심덕과 그러한 비극적 선택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우진이 죽던 해에 쓴 희곡 「난파」는 제목에서도 암시되지만 이러한 죽음을 예고하고 있는 듯싶다.
김우진은 이 작품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유명한 아리아, ‘카로 노메(그리운 이름)’을 번역하고 그 아리아를 지문의 배경음악으로 정한다. ‘카로 노메’는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리아인데 ‘카로 노메’를 열창했을지도 모르는 윤심덕을 상상해서 썼던 것 같다.
김우진은 자살 직전 「출가」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 글에서 그의 친구는 그에게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면 “너의 귀여운 아들을 잊을 수 있겠냐?”라고 묻는다. 김우진은 잊지는 못하겠으나 그런 사랑의 힘보다 더 큰 사랑의 힘이 있다고 대답한다.
김우진의 아들은 장성해서 유명한 언어학자가 된다. 한국어의 알타이어설을 정립한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김방한이 바로 그 이다. 이인화를 변명하는 건 아니고 김우진을 통해 당대 지식인 모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