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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빈처」 삼부작을 ‘여성의 눈’으로 읽는다면?

by 양문규

1921년에 발표된 현진건의 「빈처」‧「술 권하는 사회」‧「타락자」는 일종의 연작소설의 성격을 갖고 있다. 연작소설이란 각각 독립된 작품이지만 이들이 일정한 내적 연관을 지니면서 연쇄적으로 묶여 있는 소설을 일컫는다.


「빈처」의 주인공은 문학을 해서 돈도 벌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회가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원망한다.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은 일본서 공부하고 돌아와 제 딴에는 조선사회를 위해 일하려 하나 오히려 그 사회에 실망하고 환멸에 빠진다.


「타락자」의 주인공은 이도 저도 안 돼 실패를 자인하면서 기생과 사귀고 주색에 빠진다. 이 삼부작은 기존의 문학사회학적 관점에서 읽으면, 물질‧돈이 중시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와 고립된 지식인(예술가)의 모습을 통해 현실비판을 드러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학사회학이 아닌 문학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읽힐 수 있을까? 「빈처」 삼부작 이야기는 모두 돈벌이를 못하는 젊은 남편과 무식하지만 상당히 부덕이 있는 아내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가 이뤄진다.


「빈처」에서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남편에 비해 아내는 무식한 여자로 설정된다. 아내는 가난하나 자존심이 강한 소설가 남편을 위해 전당 잡힐 옷을 찾는다. 가난에 쪼들리는 아내는 남편에게 “여보, 당신도 잘 살 도리 좀 하세요”라고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권고를 한다.


이에 남편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나!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게지, 저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착한 아내는 부잣집으로 시집간 언니가 형부와 싸우다 눈자위가 멍든 것을 보고선 가난한 남편이 옳았다며 눈물을 짜내고 주인공도 이에 감격한다.


「술 권하는 사회」서 아내는 의인법을 새겨들을 줄 모르는 무식한 여자다. 아내는 늘 만취해서 귀가하는 남편에게 매일 누구랑 그렇게 술을 먹는지 묻는다. 남편은 “이 조선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 다오”라고 하자,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며 한탄한다.


작가심리학 관점서 해석하면, 현진건이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젊은 계모와 양모 밑에서 자라면서 입은 유아기의 정신적 외상의 하나로 모성 결핍을 지적한다. 「빈처」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유아적 투정과 「술 권하는 사회」에서 술에 대한 집착들은 이런 모성결핍에 연유한다.


「타락자」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성행위에 대한 공포와 기생 춘심을 대하며 입맞춤에 집착하는 것은 모성의 결핍을 보상하려는 구강기로의 퇴행 의욕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실망은 그의 모성결핍이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좌절되는 것을 보여준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초보적인 심리학 지식으로 작중인물을 해명하다 보면 자칫 억지춘향 격의 해석을 내리게 된다. 오히려 앞의 문학사회학 또는 심리학의 관점을 페미니즘 관점과 결합해 여성의 눈 또는 시각으로 이들 작품을 살피면 좀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이 나온다.


삼부작 속 남편들의 유아적 투정, 술 집착 등의 퇴행은 식민지하 남성 가부장의 무기력하고 불안한 모습의 반영이다. 아내를 무식한 여성으로 그리는 것은, 남성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거나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로 전가하는 ‘잘못된 투사’의 과정이다.


「타락자」에서 남주인공은, 사귀던 기생 춘심이 부자의 시앗이 돼 살림 들어갔다는 말을 듣자 “집 잃은 어린애같이 속으로 울며불며” 거리를 방황한다. 또 그는 춘심으로부터 성병(임질)을 얻고 아내에게 옮겨 임질 균에 감염된 이세가 태어날 것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다.


이는 식민지 치하에서 공적 자아로서의 삶의 가능성이 봉쇄된 남성 주체가 ‘거세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퇴행현상이다. 현진건 말고도 이광수, 염상섭, 김동인, 채만식 등 남성작가의 소설을 “여성의 눈”으로 검토하면 “이럴 수도 있네!” 하는 새로운 독서 경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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