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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여행과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by 양문규

이탈리아를 몇 군데 못 가봤지만, 그곳을 여행할 때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떠올렸다. 괴테는 1786년부터 2년에 걸쳐 “마흔이 되기 전 공부 좀 해봐야겠다.”며 이탈리아반도를 여행한다. “공부 좀 해보겠다고!?”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무엇을 공부하고자 했을까?


괴테는 굳이 『이탈리아 기행』이 아니더라도 그의 문학작품 곳곳에서,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 꽃 피는 나라?”라는 유명한 구절이 말해주듯이, 이탈리아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품는다. 나는 체코 프라하에서 비행기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 밀라노로 갔다.


밀라노 도착 후, 알프스가 보이는 코모 호수를 향했다. 괴테도 카를스바트(현재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에서 출발하지만 당시는 마차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을 것이다. 그 역시 빙설을 이고 우뚝 솟은 알프스 봉우리 아래 오렌지와 레몬 꽃이 핀 북부 이태리의 절경을 봤을 것이다.


1305.jpg 알프스를 발코니로 하고 있는 밀라노 인근의 코모 호수


괴테는 북부의 베네치아로 가서는 그곳을 “달리 비교할 데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집들이 모두 물 위에 있으니 굳이 괴테가 아니더라도 그런 말을 하겠다. 솔직히 나는 베네치아를 겨울 우기에 여행했기에 그곳이 낭만적이기보다는 수해지역을 온 것 같아 마음이 심란했다.


그래도 괴테는 역시 다른 눈으로 본다. 그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이 섬을 재미로 도망쳐 와 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불리한 장소에서 안전을 찾는 법을 익히고, 불리한 것을 유리한 것으로 바꿔, 북유럽이 어둠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영리한 자들로 변신했다고 평한다.


1347.jpg 겨울 우기 물이 찬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괴테는 로마에 와서는 역시 그곳의 장엄한 건축물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베드로 성당을 보고는, “예술도 자연처럼 어떻게 모든 측량의 기준을 없애 버릴 수 있는지 알게 됐다”라고 말한다. 시스티나 예배당을 보곤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해 본다.


콜로세움은 너무 웅장해서 그 모습을 영혼에 간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조금 더 작게 만들었어야 기억에 저장할 수 있을 텐데” 말하며, 콜로세움을 보고 나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작아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로마로 들어선 날로 두 번째 탄생을 맞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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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50621_013537286.jpg 베드로 성당(위)과 콜로세움 야경


그러나 괴테는 정작 나폴리를 가서는 로마를 되돌아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탁 트인 나폴리에서 로마를 생각하면 로마는 마치 테베레 강변에 자리한 기분 나쁜 낡은 수도원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괴테는 로마의 문명보다 이태리의 자연에 더 크게 감복한 걸까?


이 부분부터 괴테의 여행은 나와는 본격적으로 달라진다. 괴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르네상스적 종합적 인간형이다. 괴테는 ‘색채론’, 식물학‘ 등 다수의 과학 저작을 남겼고, 꽤 수준 높은 광물학자, 지질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한때 은광과 구리광산에서 일하기도 한다.


광산 일은 단순히 광물을 캐고 이윤을 얻는 작업이 아니라 그것에서 자연의 근원을 탐구하고 더 고귀하고 더 본질적인 것을 인식하고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괴테는 나폴리로 여행 가서는 지금은 ‘푸니쿨리 푸니쿨라’ 노래로 유명한 인근의 베수비오 화산을 등반한다.


베수비오는 활화산이라서 괴테가 방문하던 중 폭발하면서 하마터면 죽을 뻔도 한다. 그러나 이런 활화산은 괴테에게는 지질학과 관련해서 매혹의 대상이었다. 괴테가 시칠리아 섬을 여행한 것 역시 뭣보다도 그곳에 있는 에트나 화산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괴테는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유럽 문명의 발원지인 로마의 문명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이와 함께 지질학적 관심을 불태운다. 괴테에게 이태리 반도의 화산과 그로 인해 형성된 지형 및 암석은 지구의 신비로운 깊은 속을 들여다볼 드문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그래선지 그는 문학에서도 단순히 독일문학을 정립하는 데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질학이 지구의 속과 근원을 살피듯 그는 모든 문학의 근원을 상상한다. 그는 유럽 바깥의 아랍 문학,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학, 그리고 평생을 통해 중국문학에까지 관심의 지경을 넓힌다.


괴테는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세계 문학”이라는 표현을 만든다. 영국과 프랑스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우월한 생각을 전달코자 했던 것과 달리, 괴테는 동서양 문학의 천착을 통해 문학적 보편성을 찾고자 한다. 인류가 모두 한 뿌리며, 같은 토대 위에 서 있음을 확인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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