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가장 큰 주인 바이에른의 주도 뮌헨 관광을 가게 되면 뮌헨도 뮌헨이지만, 그곳에서 120km 떨어진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 즉 ‘백조의 성’을 구경하고 오게 된다. 뮌헨에서 열차로 한 2시간 걸릴까, 가는 도중 먼발치로 보이는 독일 쪽 바바리안 알프스가 절경이다.
이 성은, 백조의 성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백조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자태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숲과 먼 산들을 배경으로 서있는, 원뿔형 지붕이 덮인 불규칙한 윤곽의 높은 탑들로 이뤄진 이 성은 디즈니랜드의 상징인 신데렐라 성의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유럽의 성들이란 대개 전쟁을 위한 요새이거나 왕가의 거주용 궁전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백조의 성은 바위산 정상에 세워지고 바위들 사이로 해자도 나있어 난공불락의 요새 같이도 보인다. 그러나 그 성에서 전쟁이 치러지고 포탄이 작열했다는 상상을 하기는 어렵다.
한편 이 성을 왕가의 거주용 궁전만으로도 볼 수 없는 게, 성의 내부가 환상적이고 동화의 세계와도 같이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이 성은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의 마니아였던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가 자신의 탐미적 꿈의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세운 궁전이다.
바그너 마니아에다 바그너를 상상해 성을 지었다니 루트비히라는 왕이 썩 호감이 가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루트비히 왕은 이 성을 다 지은 직후 얼마 안 돼 인근 호수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타살설도 있다. 왕은 원래 정치에 무관심했고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자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지만, 당시 독일은 프로이센으로 통일됐고 프로이센의 경쟁 국가였던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는 폐위될 처지에 놓여 있었기에 정치에 무관심했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예술의 세계에 더 빠져들어 갔는지도 모른다.
루트비히가 자살했던 시기 즈음에, 일본 도쿄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모리 오가이’가 1884년 육군성의 명령으로 독일 유학을 간다. 그는 유학이 끝나고 1888년 귀국한 후 군의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소설 창작을 함으로써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소설을 개척한다.
당시 모리 오가이가 쓴 단편소설 「마리 이야기」(1890)는 바로 이 루트비히 국왕의 자살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단 루트비히가 주인공은 아니고 그의 자살사건을, 독일의 일본 유학생 화가 ‘고세’와 독일 아가씨 마리의 허구적 사랑 이야기에 함께 엮는다.
유학생 고세는 뮌헨 미술학교의 모델인 마리와 사랑에 빠진다. 과거 마리의 아버지는 루트비히 왕의 전속화가였다. 루트비히 왕이 화가의 아내인 마리의 어머니를 탐하다가 넘어져 다치면서 마리는 그 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
어느 날 고세는 마리와 함께 뮌헨 인근 호수로 뱃놀이를 나가 백조의 성을 향하던 중 루트비히 국왕과 마주친다. 정신병자인 국왕은 마리를 그녀의 어머니로 착각했고 이에 놀란 마리는 물에 빠지며 루트비히도 함께 익사한다. 고세의 마리와의 사랑은 물거품으로 끝난다.
모리 오가이는 이 소설 말고도 「무희」‧「아씨의 편지」 등의 독일을 무대로 한 연작소설을 몇 편 더 썼다. 역시 일본인 유학생과 독일 아가씨들의 비련을 줄거리로 삼는다. 흥미로운 건 그 독일 아가씨들은 꽃 파는 행상, 무희, 광인, 그림 모델, 궁중 하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독일 귀족사회 또는 상류사회에서 버림받거나 소외된 하층계급의 여인들이다. 모리 오가이가 유학을 간 시점은 프로이센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독일은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국가가 되며 막강한 산업과 군사력을 보유한 강국으로의 도약하던 시점이다.
20세기 초 일본 군국주의의 생성은 바로 이 프로이센 독일의 표본을 받아들여 얻은 결과다. 모리는 소설 속에서 유럽의 ‘선진 국가’ 독일을 선망하며, 한편으론 일본 지식인 남성과 독일의 하층민 소녀를 몽상적으로 결합한다.
유럽서는 주변부적 인물일 수밖에 없는 일본의 남성지식인은 그곳의 하층여성에게 자신의 심정을 투사한다. 모리의 소설에서 독일 여인들은 소녀이거나 미천한 신분의 인물로 자살하거나 미쳐버림으로써 주인공이 독일에서 가졌던 낭만적 사랑은 낭만으로만 남게끔 끝난다.
일제 말 이효석이 일본어로 쓴 소설 몇 개가 있다. 그중 「은빛송어」(1939)와 「엉겅퀴의 장」(1941)은 조선 지식인과 일본 여인의 사랑을 다룬 애정소설이다. 이 소설들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이 연애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조선에 건너와 카페 여급으로 일하는 일본 여인들이다.
그들과의 사랑은 좌절되고 일본 여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실의에 빠진 조선의 지식인 남성은 그 여인들에 대한 아련한 감정을 품는다. 그리고 그녀들의 고향인 도쿄 또는 구마모토 등지에서 온 그림엽서의 풍경을 보면서 일본을 향한 동경에 젖는다.
모리 오가이가 라인 강변의 로렐라이언덕, 뮌헨의 백조의 성과 호수를 배경으로 일본 남성 지식인과 독일 여인들의 비련을 그리면서 드러냈던 유럽에 대한 선망과 열등의식들을, 이효석 소설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확인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