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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l 23. 2019

유럽 저가항공의 함정과 그단스크 유람

내가 살던 프라하는 사통팔달의 도시다. 중앙역서 기차를 타면 4~5시간 시간 정도에 베를린, 비엔나, 부다페스트 등으로 데려다준다. 비행기로 한, 두 시간이면 파리, 로마, 모스크바 등에도 간다. 게다가 저가항공(LCC, Low Cost Carrier)을 잘만 이용하면 서울-부산 간 ktx 요금 정도로 북유럽과 영국 등 대서양 쪽의 나라들도 세 시간 안팎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저가항공은 나 같은 허술한 고객들을 상대로는 도처에 많은 함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저가항공의 규정들은 짐 규정을 비롯해 일반 항공의 것과 달리 별스러운 게 많은데, 아무래도 영어로 된 규정을 읽다 보면 자주 이를 놓치게 된다. 가령 승객이 손수 비행기 표를 출력해서 탑승해야 한다는 규정을 알지를 못해 처음에는 꽤 비싼 차지를 물기도 했다.    


저가항공을 타는 일은 겁나기도 하는데, 몸체가 워낙 작아서인지 착륙할 때는 기체가 다 부서져 나갈 듯싶은 굉음과 충격을 안겨다 준다. 내 말이 과장은 아닌 게, 이용객들이 뽑은 ‘최악의 단거리 항공사’로 선정된 라이언 에어(Ryan Air)는 활주로 착륙이 끝나고 나면 꼭 축하 팡파르를 울려준다. 어떤 때는 승객들이 얼마나 긴장했던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사한 착륙에 저절로 박수갈채를 보낸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여행 중이던 2015년 3월 당시엔 독일의 저가항공사 저먼윙스가 알프스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럽서 여행할 때는 싼 맛에 거의 백 퍼센트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하의 집으로 돌아갈 때 우정 폴란드의 그단스크와 바르샤바를 둘러서 간 것 역시 저가항공 위즈 에어(Wizz Air)와 라이언 에어가 제공한 파격적으로 싼 비행기 요금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단스크 같은 도시는 같은 나라의 바르샤바나 크라쿠프와 달리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해 얼씨구나 하는 마음으로 가게 됐다. 물론 이러한 싼 요금은 누군가의 노동권을 최소화하며 희생한 결과라는 점에서 늘 마음에 걸린다.

 

그단스크로 향하는 날 아침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가까운 숙소에서 출발했다. 중앙역서 열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분 정도라 느긋이 숙소를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됐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가 가야 하는 목적지 공항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한(Hahn) 공항”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두 공항은 모두 ‘프랑크푸르트’라는 지명이 들어가 있어도 엄연히 다른 공항이었다. 얼마나 다르냐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프랑크푸르트 역에서 15분 걸리나,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은 버스로 2시간 걸린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나?  


그럼에도 버스에 계속 미련을 두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아내가 황급히 택시를 잡아서 한국 돈으로 22만 원을 들여 공항으로 갔다. 당시 그단스크서 바르샤바로 가는 저가항공 요금이 만원 이하였으니 우리로선 엄청난 출혈이었다. 택시로 거기까지 가는 사람도 없는지라 터키인 택시기사는 가면서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 출발시간이 연기가 돼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다리면서 공항의 꼴을 보니 가건물같이 지어놓은 청사의 벽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등 유럽의 공항 치고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그곳에 유럽의 저가항공사란 항공사들은 죄 집결해 있었다. 일반적으로 국제공항에서 저가항공의 탑승구는 구석진 데 천덕꾸러기같이 쳐 박혀 있기가 일쑤인데, 이 경우엔 그런 공항에 아예 명함도 못 들여놓고 여기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에 모여들 있는 것이었다. 


낮 12시에 떠나야 하는 비행기는 오후 늦게 출발을 했다. 저가항공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 비행기가 그단스크에 다 와서는 착륙을 못하고 발트해 상공을 계속 빙빙 떠다녔다. 발트해의 악명 높은 돌풍을 만난 것인데 그 작은 비행기가 몇 번씩 곤두박질치면서 사람을 놀래게 하더니 결국은 그단스크에 착륙하지 못하고 바르샤바 공항으로 갔다. 원래 행선 예정지인 바르샤바를 이틀 먼저 오게 됐으니 황당했다. 항공사 쪽에서는 버스를 마련해 그단스크까지 다시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그단스크서 바르샤바까지 비행기로는 한 시간 걸리지만, 버스로 가면 폴란드 내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5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단스크로 돌아가야 할지 말지를 결정을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그단스크가 고향인 모자에게 그단스크가 어떠냐고 물어보니 어머니 되는 사람은 꼭 가보라고 하고, 청년 아들은 별 볼 일 없다고 한다. 결국 그단스크로 가긴 갔는데 도착하니 자정이 훨씬 넘었다. 공항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왔는데 우리가 예약한 장소는 아파트라서 주인은 자기 집에 가버렸다. 택시운전사가 자신의 전화로 주인을 수소문해줘 우리가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저가항공 요금의 싼 맛에 얼씨구나 하고 그단스크를 둘러 가고자 한 것이 금전적으로도 손해가 나고 이 고생 저 고생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실수담의 한 소재로 쓸 수 있게 됐으니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거리가 된 셈이다.


게다가 그단스크 자체가 좋았다. 나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우연히도 노르웨이의 베르겐, 독일의 브레멘, 에스토니아의 탈린, 라트비아의 리가, 그리고 이 그단스크 등 옛날 한자동맹에 소속된 항구도시들을 두루 찾을 기회를 가졌다. 이것이 우연이 아닌 게, 결국 중세의 통상 거점 도시가 현재에는 항공교통을 연결하는 허브 도시가 되기 때문이리라. 그단스크는 한자동맹 도시들 중에서도 큰 형님 포스를 차지했던 도시였다. 

발트해 공간이 유럽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때 그단스크는 서유럽과 동유럽 내륙을 연결하는 거점 항구였다. 비록 그단스크의 옛 건물들 거개가 이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복원된 건물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단스크 운하의 양쪽으로 15~16세기에 세워진 창고들은, 도시 전체가 창고였다 할 만한 암스테르담을 방불케 했다. 그단스크 건물의 파사드에서 서유럽과 동유럽 또는 북유럽이 교차하며 이뤄진 다양한 변주곡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가본 유럽의 항구도시들 중에서 인상적인 곳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그리고 여기 그단스크였다. 베네치아에서 지중해 너머 동양을 향한 유럽의 욕망을 봤다면, 리스본에서는 유럽의 욕망이 지중해에서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넘어가는 것을 봤고, 글래스고에서는 아담 스미스와 제임스 와트를 만나면서 유럽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대서양으로 어떻게 향하는지를 봤다. 이에 비해 그단스크는 아직도 유럽이 유럽이기만 했던 시절의 흔적을 느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여행지였다.




















한자동맹에 속했던 도시들로 위에서부터  그단스크, 브레멘, 리가, 베르겐 – 모두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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