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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l 31. 2019

유럽 첫 렌터카 여행과 알람브라의 비애

우리 부부는 체코에 사는 일 년 간은 자가용을 갖지 않고 살기로 했다. 프라하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관광객들이 주로 사용하는 교통권은 한국 대중교통 요금 가격과 비슷하지만, 여기서 사는 경우 이십여 만 원 남짓한 돈으로 일 년 기간의 교통카드를 발급받으면 그것으로 트램, 지하철, 버스 등을 자유롭게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프라하 바깥으로 여행할 때는 차가 있으면 편리하겠다 싶어서 아내가 몇 번 차를 빌려보자고 했다.  


유럽의 도시는 트램 또는 무궤도 버스들도 같이 다녀 좀 복잡해 보인다. 프라하에서도 트램이 시내의 좁고 굽은 길을 휘돌아갈 때는 도로변에 주차해놓은 자동차들과 거의 붙어버릴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때 트램은 저편에서 오고 있는데 승용차가 트램 선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도 봤다. 그래도 트램과 차과 부딪혔다는 사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별 구실을 다 달아 차를 빌려 사용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런데 아내가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면서 거기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진짜 불편했던 건지 아니면 어려운 양 얘기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차를 빌려서 여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유럽서 첫 렌터카 여행을 하게 된 곳이 바로 스페인에서부터였다. 프라하에서 로마로 가 관광을 한 다음 스페인의 세비야로 가서 그곳 공항서부터 차를 빌려 스페인 여행을 시작했다. 


나는 왕년에도 자잘한 차 사고를 밥 먹듯이 내서 운전에 대한 두려움도 있거니와, 원래 운전하는 자체를 싫어했다. 운동신경인지 공간지각 능력인지 뭐 그런 것들이 평균 이하이고, 더 결정적인 건 덤벙대는 성격에다가 돌발 상황에서는 당황해하길 잘해서다. 더욱이 스페인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낯선 차로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내 역시 운전을 썩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남편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핸들을 잡게 됐다. 


아내는 세비야 공항서  아주 느리게나마 시내 숙소까지 차를 무사히 몰고 갔다. 대부분이 로터리로 돼있는 스페인의 도로교통 체계에 익숙지 않아 헤매기도 했고 영어로 나오는 내비게이션이 처음에는 다소 낯설었으나, 첫 번째 운전 미션을 그런대로 잘 수행해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한국에서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운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내가 운전을 해주는 것이 꼭 맘에 편한 건 아니었다. 약간 자존심도 상하고, 아내가 계속 운전을 해야 된다는 게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라 내게도 역시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세비야에서 ‘절벽마을’로 유명한 론다까지는 아내가 운전하고, 론다를 떠나 그라나다 숙소로 이동할 때는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아내는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구며 올리브와 해바라기 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길을 달리면서, 당신과 함께 이런 곳을 차로 달려보는 것이 자신의 로망이었다면서 자못 흥분해했다. 나는 로망이고 뭐고 그 흔한 선글라스조차 없어 작열하는 스페인의 태양에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 쓰라린 눈을 비벼가며 운전하느라 고투했다. 


그라나다 시내로 들어오니 우리 숙소가 위치한 구 도시 안은 아주 복잡한 미로로 돼있어 그렇지 않아도 시원찮았던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멈췄다. 우리가 머무를 호텔은 관광명소인 알람브라 궁전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숙박비가 비쌌다. 원래 도시 외곽에 싼 숙소를 잡으려 했는데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고객 사은 쿠폰을 받아 이곳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 호텔을 찾느라고 아주 진을 뺐는데, 도착한 호텔에는 역시나 주차장이 없어 인근의 공영주차장을 다시 찾아가야 했다. 그런데 그만 그곳을 찾아 우왕좌왕하다가 좁다란 골목에 박아 놓은 철제 봉에 접촉사고를 냈다. 사고 자체는 심각한 게 아니었는데, 부딪히는 소리에 놀란 나머지 봉에서 급히 차를 후진시키다가 우측 차문 앞뒤로 해서 범퍼까지 심각하게 스크래치를 냈다.       


일단은 또 그런 사고를 낸 나 자신이 환멸스러웠다. 더욱이 여행 초입에 이런 사고를 냈으니 아내가 ‘로망 어쩌고’한 스페인 여행을 아주 망치게 된 셈이다. 저 사고 난 차를 끌고 며칠간 안달루시아 지방 곳곳을 둘러 마드리드 공항까지 갖고 가야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턱 막혔다. 게다가 렌터카 업체가 아닌 온라인 중개업체의 값싼 보험을 들어 놓았기에 그 비용을 제대로 보상받을 수나 있는지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나중에 아들애에게 부탁해 암스테르담에 있다는 중개업체 사무실에 이메일은 물론, 직접 전화까지 걸고 해서 세 달 후 겨우 받아냈다. 이후론 꼭 렌터카 업체의 보험만 든다.) 


그래도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알람브라 궁전을 가보아야 되는 건 아닌가 하면서 알아보니, 그곳을 구경하려면 이미 몇 달 전에 예약을 해놓아야 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니면 꼭두새벽에 그곳 매표소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실제 표를 구하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호텔 프런트에서는 전문 가이드가 하는 투어 패키지를 소개했는데 워낙 비싸 얼마가 나올지 모르는 ‘그놈의 차 수리비’를 생각하니 절로 고개를 젓게 했다. 


모든 여행 의욕이 꺾인 셈인데, 그렇다고 호텔 방 안에 앉아 궁상을 떨고만 있을 수 없어 저녁에 숙소에서 걸어가면 되는 알람브라 궁을 찾아갔다. 물론 안으론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궁전을 끼고 있는 고갯길로 힘들게 올라가니 알카사바 성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이르게 됐다. 그곳은 사람도 별로 없고 아주 한적하니 평화로웠다. 


마침 저녁때가 되니 서늘한 바람이 불며 우거진 숲 너머 알람브라 쪽으로 저녁놀이 지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태양이 강렬해서인지 저녁놀과 구름 색도 대단했다. 해질 무렵 산 아래서 궁을 올려다보면 궁전이 마치 붉게 타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백성들이 ‘알람브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알람브라는 바로 아랍어로 ‘붉다’는 뜻이다. 혹은 성을 짓던 시절 밤에 횃불을 밝히고 붉은빛 아래서 공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다. 


알람브라 알카사바 성에 구름 노을이 드려졌다.


해가 거의 다 떨어질 무렵 어디선가 버스킹을 하는 건지, 타레가가 작곡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또 어디선가는 플라멩코를 연상시키는 캐스터네츠 소리도 들려왔다. 역시 여기가 알람브라임을 실감케 했다. 원래 타레가의 곡이 아름다울 정도로 슬픈 음조이기는 하지만 그날따라 구구절절이 내 처지를 묘사하는 듯이 들렸다. ‘도대체 차량 수리비는 얼마나 나올까?’ ‘돈도 돈이지만 나는 왜 이 모양으로 밖에 안 생겼나?’ 하는 생각만 줄곧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마음이 쓰린 건 스페인 여행이 자신의 로망이라고 했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속상해하냐?’면서 손을 잡아 주었다. 아내는 자기는 다시 태어나면 나와는 또다시 살지 않겠다고 한다. 다른 여자들에게도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남자와 살아볼 기회를 주어야 되지 않겠냐는 거다. 다른 때 같으면 나도 지지 않고 뭐라 응수할 법했는데 우스갯소리로 나를 위로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서글픈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의 용솟음치는 하늘과 구름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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