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문규 Jul 27. 2019

“반짝반짝” 에펠탑과 한국인 관광객들

우리가 체코에 체류하고 있는 중에 혼자되신 처형을 위로도 하고 기분전환도 시켜드릴 겸 체코로 여행을 오시라고 권유했다. 유럽 여행이 난생처음인 처형에게 유럽서 어디를 제일 가보고 싶냐 물었더니 파리의 에펠탑이라고 했다. 처형은 혼자서 찾아오는 여행길이 걱정스러웠는지 얼떨결에 우리가 사는 체코가 프라하와 가깝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학과  선생님은 내가 안식년을 체코로 갔다 온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돌아오니까 헝가리로 갔다 왔냐고 물어본 걸로 미뤄봐선 한국서 보면 이쪽은 다 거기가 거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그간 쌓은 체코에서의 여행 실력으로 처형과 같이 체코를 관광한 후 파리 여행을 갔다. 파리 역시 프라하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나는 파리에는 와본 적이 있어 여기서는 가이드처럼 행세해, 아내는 그렇다 치더라도 처형에게는 존경(?)을 받았다. 가령 루브르를 갈 것인지, 오르세 미술관을 갈 것인지로 망설일 때 나는 내가 갔던 루브르에는 또다시 가지 않기 위해 왜 오르세로 가야 하는지를 그럴싸하게 둘러댔다. 


일단 루브르 앞에까지 처형을 모시고 가서 매표소 앞의 장사진을 보여준 후, 저렇게 시간 걸려 들어가 보았자 그 유명한 모나리자 그림 같은 경우 관람객들이 워낙 많아서 그냥 먼발치서 사람들 틈새로 우표 크기 모양의 그림을 보고 나와야 한다며 흥미를 감쇄시켰다. 그리고는 한국 중년 여성의 취향을 저격하여 오르세는 19세기 인상파 명화들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진 곳이라며 미술시간에 배운 밀레, 고흐, 르누아르, 마네 등등을 실제 볼 수 있다고 선전을 했다. 더욱이 걷기에 약한 두 사람에게 루브르와 오르세의 관람시간 차이를 강조하니 흔쾌히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겠다고 했다.


처형은 진짜 내 말대로 본인이 아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아주 좋아했다. 게다가 나는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그림 설명을 해드렸더니 감동을 받았다. 원래 처형이 감동을 잘하는 스타일이라서 크게 믿을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19세기 자연주의’ 섹션을 관람할 때는 처형이 실망하며 왜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나오지 않고 도시 뒷골목이 등장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나오는지를 물어봐서, ‘에밀 졸라’까지 동원해가며 애써 설명해드렸다. 처형이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나, 이후 처가 식구들 만날 때마다 교수님이라 역시 설명을 잘하더라고 말해 그때마다 민망스러웠다. 


처형에게 이삭 줍는 촌부와 멀리 낟가리가 높게 쌓인 지주의 수레를 비교해서 감상해보시라고 설명드렸다.


그러나 처형을 꼭 모시고 가야 하는 곳은 오르세 미술관이 아니라 에펠탑이었다. 사실 에펠탑은 명성에 비해 그 자체로는 결코 멋진 건축물은 아니다. 건축물 자체도 자체지만 에펠탑이 서울에 있었다면 어디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파리서 공부한 사람들 말로는 산도 능선도 없는 밋밋하고 평평한 파리는 대개 6층이 채 안 되는 회갈색의 고전적 건물들이 낮게 펼쳐 있는데, 그 가운데 우뚝 세워진 모던한 에펠탑이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에펠탑은 낮에 가지 않고 베르사유를 갔다 온 날, 숙소에서 한숨 돌리고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서 갔다. 밤 9시와 10시 정각에 에펠탑의 불빛 쇼가 있는데, 이를 센 강 유람선을 타고 구경하기 위해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유람선 선착장을 가려고 강다리를 건너는데, 흑인 청년이 불빛이 반짝대는 장난감 에펠탑을 우리 앞에 대고는, “반짝! 반짝!” 외쳤다. 맨 첨엔 “반짝반짝” 소리를 들으며 한국말과 비슷한 프랑스어도 있네 했는데 아니 그건 바로 한국말 “반짝반짝”이었다. 아뿔싸! 여기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 어둠이 깔리니 셀카 봉을 든 한국 연인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외국 여행할 때 그곳 현지서 한국 사람들 만나는 걸 싫어한다. 그 이유는 나도 확실히 모르겠다. 그냥 외국여행의 신비감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경우 그들한테서 나의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보는 것 같아서다. 언젠가 알프스 융프라우에서 국내 여행업체에서 받아 온 쿠폰으로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컵라면에 햇반까지 말아 김치랑 맛있게 먹는 한국 아저씨들의 왕성한 식욕을 목격하는 순간 그냥 못 본 척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을 보면 가능한 모르는 척을 하고 다녔는데, 어떤 한국인들은 지들끼리 가다가 우리를 보고 “중국 사람들이다!”하고 떠드는 걸 듣기도 했다.  


그런데 에펠탑 불빛 쇼를 보러 간 유람선에서는 한국 사람을 봐도 된통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유람선을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선착장 쪽으로 열 대가 넘는 버스가 조금씩 시차를 두고 들어왔다. 그 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광객들이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낮에 각각의 여행사를 통해 관광을 하다가 불빛 쇼에 맞춰 모두 이 시간에 집결하는 거였다. 우리 관광객 중에는 이미 술 한 잔 걸친 이도 있었고, 어디선가는 질서를 지킵시다, 새치기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더니 파리까지 와서 같은 동포끼리 왜 싸우느냐고 훈계하는 소리도 들렸다. 어떤 이는 지도 놀러 온 주제에, “한국경제가 좋지 않다는데, 뭔 돈으로 죄다 들 여기 왔냐?”는 소리에.


아휴 나는 어디 딴 데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들과 함께 한 시간 너머 유람선을 같이 타야 했다. 유람선 좌석은 지정석이 아닌지라 유람선이 열리자 배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배 앞머리의 전망 좋은 쪽을 향해 한국인들이 돌진했다. 그렇게 흉보던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전력 질주했다. 또 출발지로 돌아올 때는 방향이 바뀌니 다시 전망 좋은 쪽으로 와르르 몰려갔다. 몇 사람 안 되는 딴 나라 여행객들은 대부분이 노인이라 그저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유람선을 단체로 세를 놓은 것 같아 파리의 야경을 보는 흥취는 덜 했다. 


그럼에도 수만 개 전구가 에펠 탑에서 축제처럼 반짝거리며 일제히 불을 켜기 시작할 때, 우리 부부, 처형, 한국 관광객들 모두 내남없이 드디어 살아생전에 '파리'에 와봤다는 기특한(?) 자부심으로 뿌듯하고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에펠 탑에서 축제처럼 수만 개 전구가 일제히 불을 켰다.  


이전 14화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역을 떠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