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문규 Jul 25. 2019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역을 떠나며

유럽 여행에서 누구나 꿈에 그리는 곳 중의 하나가 베네치아(베니스)다. 나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프라하에서 이태리 밀라노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밀라노 베르가모 공항에 도착해서 곧장 밀라노 중앙역으로 갔다. 거만한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연상시키는 밀라노의 흰 대리석 역사로 들어가니, 그러한 건물의 위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우리를 맞이한 건 이탈리아 남부 출신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하고 작달막한 청년이었다.  


거만한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연상시키는 밀라노의 흰 대리석 역사


그 청년은 우리를 도와준다며 손쓸 틈도 없이 우리 가방을 들고 대리석 층계를 날아갈 듯 올라갔다. 매표구로 데리고 가 교통티켓 등을 끊어주고 잔돈을 챙기는 것인데 백주에 짐을 분실당하는 줄 알았다. 우리는 놀라고 화도 난 나머지 그 청년에게 땡전 한 푼 주지 않았는데, 그는 별로 떼도 쓰지 못하고 무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 청년에게 좀 너무했다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베네치아에서는‥‥ 


솔직히 베네치아를 구경하면서 내내 어수선하고 심란했다. 내가 묵은 호텔 이름은 ‘베니스의 상인’인데, 그 호텔로 들어가는 길은 질퍽거리고 숙소 안에도 마당 한쪽으론 물이 들어와 있어 집안은 음습했다. 비단 숙소뿐만 아니라 하늘조차 가늘게 보이는 좁고 복잡한 베네치아의 골목으로는 물이 언제라도 넘쳐 흘러들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큰 바다로 나가는 산마르코 성당이 있는 광장에 이르니 물이 차서 사람들은 신발과 아랫도리를 비닐로 감싸고 다니거나 그도 아니면 널다리를 이용해 다녀야 했다.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물이 찬 산마르코 광장, 심란하기 짝이 없다.



내 고향 인천의 주안 집은 상습적인 침수 지역이었다. 특히 인천 앞바다가 만조일 때 맞춰 큰비가 내리면 엄청난 물난리를 겪는다. 어느 날은 마당으로 나오니 장독이 딴 데 가 있었다. 베네치아에는 집 현관까지 물결이 일렁대는 곳에 배를 대고 물건을 싣지 않나, 건물 담벼락엔 물이 들고난 흔적들이 얼룩져 있어, 어떻게 저런 곳에서 정신 사납게 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물이 금방이라도 찰랑찰랑 차오를 듯싶은 발코니에 예쁜 화분들을 갖다 놓은 걸 보면 그도 아닌가 보다. 


베네치아를 너무 흉만 봤는데, 바다로 나가 산마르코 성당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큰 덩치의 석조건물을 물 위로 가볍게 떠올리고 있는지, 베네치아는 역시 ‘지중해의 여왕’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산마르코 성당은 유럽서 흔히 보는 고딕 성당이 아니고 바티칸 제국 콘스탄티노플의 성당을 닮아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이는 끊임없이 지중해 건너 동양을 향했던 베네치아라는 자본의 욕망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이러한 욕망이 결국 유럽 전체가 아직 어둠에 있을 때 영리하게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거 아닌가?




베네치아를 출발하는 날 이른 아침 숙소에서 한창 짐을 꾸리고 있는데 카톡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비보가 날라 들어왔다. 예상했던 것이긴 하고 혹시라도 한국에 가게 될지도 몰라 그 날을 피하고 피해서 온 여행인데 아내의 형부 되는 그러니까 나의 큰동서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 것이다. 아내는 자신의 언니의 슬픔에 같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짐을 싸면서도 넋이 다 나가 보였다. 


그래도 여행 일정은 있는 것이기에 아침 일찍 서둘러 베네치아의 ‘산타 루치아’ 역으로 나갔다. 역 이름이 산타 루치아다! 중학교 때 인천 앞바다 작약도로 소풍 가면서 선상에서 불렀던 그 ‘산타 루치아’다. 원래 ‘나폴리 노래’인 ‘오 솔레 미오’나 ‘산타 루치아’는 시원하고 활달한데, 베네치아의 산타 루치아 역에서 기분은 영 그렇지를 못했다. 


산타 루치아 역을 나오면서 맞은편 산 시메오네 피콜로 성당을 보면, 베니스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기차에 오르니 시간이 꽤 남았다. 우리 좌석은 차량 출입구 구석진 데였다. 피렌체로 가는 기차표는 내가 예약했는데 좌석 지정을 깜빡 잊었다. 아내는 예약할 때 해가 어느 방향으로 들 것인가까지 고려하면서 좌석을 지정하는데, 나의 불찰로 철도회사 쪽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준 구석진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기차 안은 예상외로 자리가 많이 비어 딴 데로 옮길까도 했는데 중간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모여 있어 그냥 앉아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찌감치 서두르기도 했고 또 여러 가지로 경황이 없었던 가운데 비로소 자리를 잡고 나니 한숨 돌리면서

차가 출발하기 전 둘 다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아내가 갑자기 놀라 깨더니 가방 지퍼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새 범인은 우리가 앉은 출입구 쪽으로 들어와 일을 벌이고 나간 것이다. 혹시 빈 지갑이라도 버리고 가지 않았을까 열차 안 화장실을 뒤졌으나 허사였다. 


기차는 이미 산타 루치아 역을 떠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건만, 아내는 자신이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워했다. 게다가 언니는 슬픔에 젖어 있는데 자기는 이렇게 여행이나 다녀 벌 받은 것이라는 자책까지 하면서 괴로워했다. ‘물난리 난’ 도시라고 갖은 험담을 해댄 나에게 베네치아는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복을 하는 것 같았다. 피렌체에 도착한 나는 여행 중 그렇게 돈 쓰는 데 쫀쫀하게 굴다가,  역전의 제법 큰 중국 식당에 들어가 아내에게 점심을 크게 쐈다. 돈을 왕창 잃고 나니 돈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이전 13화 유럽 첫 렌터카 여행과 알람브라의 비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