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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Sep 18. 2019

프라하의 아내

아내는 프라하에서 일 년을 살았던 때가 자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얘기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뭐가 그렇게 빛나는 순간이었냐고 물었는데 그 대답을 아주 짐작 못했던 바는 아니나, 지극히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것이었다. 제일 먼저는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프라하에서 일 년을 살아봤다는 이유에서다. 언제라도 집에서 트램을 타고 20분 정도만 나가면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 틈에 자기가 끼여 있다는 사실에 늘 새 날을 사는 것 같았단다.

   

한쪽에 준엄한 고딕의 첨탑이 있는가 하면 바로 그 옆엔 육감적인 바로크 궁전이 있는 환상의 도시 프라하에서 마치 꿈을 꾸고 사는 것만도 같았단다. 그리고 시내에서 장을 보거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트램을 타면 동양인인 자기에게 쏠리는 승객들의 시선에 묘한 흥분감마저 느꼈다고 한다. 공주병!? 


언제나 붐비는 올트 타운의 관광객들


다음으로 프라하에서는 맘만 먹으면 유럽의 어느 곳이라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우리 부부의 유럽여행은 계획서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일을 아내가 도맡다시피 했다. 물론 나도 아내의 여행 계획에 약간씩 수정 제의를 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나의 임무는 가다가다 크고 작은 실수를 해서 이렇게 실수의 여행담을 쓰는 거였다.  


아내는 어찌나 열심히 여행 계획을 세우는지, 정작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피곤을 못 이겨 그곳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자다가 온 적도 더러 있다. 아내는 이렇게 여행하면서 쌓은 실력으로 지인 아줌마들을 프라하로 불러들여 ‘발칙한 갱년기’를 슬로건으로 크로아티아를 다녀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나의 안식년이 끝난 후 아줌마들의 성원에 힘입어 미니 밴 8인승의 기사 겸 가이드가 되어 3천 킬로미터의 유럽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니 이 시기가 자기 생애의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얘기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다이내믹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내는 그곳 음식들을 먹고 음식을 해 먹는 것도 그와 못지않게 행복해했다. 아내는 체코에서는 밥보다 치즈 먹는 걸 더 좋아했다. 할인 행사를 할 때는 단돈 천 원에도 살 수 있는 치즈들을 사 와 와인과 같이 먹는 걸 큰 호사로 생각했다. 하얀 곰팡이가 덮인 치즈든, 젓갈 맛이 나는 치즈든 유럽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치즈가 있다는 그 자체를 좋아했다.  


우리 부부는 와인에 대해서 일자무식이라, 그냥 2~3천 원 가격대의 와인에도 만족했다. 슈퍼마켓에 가면 산처럼 쌓인 낮은 등급의 헝가리 산 토카이 와인과 포르투갈 산 포르투 와인이 할인해서 딱 그 가격이었다. 참고로 그쪽 사람들에게 만 원 상당의 국내 모라비아 산 와인은 아주 괜찮은 선물이다. 와인 때문인지 아내는 귀국해서 건강검진을 하니 지방간 수치가 다 높아져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선 음식이 달라져서 그런지 치즈와 와인도 시들해졌다.   


아내는 거기 식재료들로 음식을 해 먹는 것도 좋아했다. 프라하서 2천 원 정도면 500그램의 렌즈 콩 한 봉지를 사는데, 렌즈 콩을 갈아서 비지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마스카르포네 치즈로는 티라미수 케이크를 만들기도 하고, 콜레뇨 요리의 덤플링으로 쓰는 밀가루 재료를 사 와서는 꽃 빵으로 만들어먹기도 했다. 물론 처음엔 슈퍼에 가서 체코 말로 된 종류별 밀가루를 식별하는데 나름 애를 먹었다.       


여기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체코엔 베트남 식재료들도 많았다. 오래전 공산 체코 시절 산업연수생 등으로 왔

던 북베트남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동네 식료품 가게는 거의 베트남 사람들이 사장이라고  보면 된다. 덕분에 다양한 베트남 쌀국수를 사 와 면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그 유명한 체코 맥주로는 술떡과 약과를 만들어 먹었다. 약과의 경우 처음에는 청주 대신 와인을 넣어 너무 딱딱했는데, ‘브라니크’라는 감귤 맛 나는 맥주 또는 에일 맥주를 써서 부드럽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음력 정월 날에는 고소하고 달달한 약과에 잣을 박아 중국학과 체코인 교수들에게 돌려 인기를 끌었다. 또 집으로는 체코 사람들을 자주 불러들였는데, 심지어 집주인까지 초대해 한국음식으로 저녁을 해먹이 곤 했다. 아내는 이런 일들을 그렇게 즐거워했다. 


냉장고에 쟁여놨던 치즈들


끝으로 즐거웠던 일 한 가지만 더 얘기해보라고 했더니, 자기가 한국서 하던 일에서 해방된 것도 좋았다고 했는데, 아뿔싸 나로서는 약간 듣기가 거북했던 얘기까지 나왔다. 그건 다름 아니라 자신이 한국에서 맏며느리로서 해야 했던 여러 일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나는 아내가 그동안 그와 관련해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 그 정도로 부담을 가졌는지를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체코 가서 맞은 추석날 밤에는 프라하 성을 올라가서 호젓이 달구경을 하고 왔다. 그날 거기서 동유럽을 혼자서 여행한다는 한국인 아가씨를 만났다. 아내는 명절 기간에 여행을 하는 그 아가씨의 자유로운 영혼을 부러워했다. 아내는 야간 조명에 한껏 취한 프라하 성의 비투스 성당과 블타바 강의 야경도 구경하면서 아주 여유 있는 추석을 보냈다. 그러나 아내는 ‘ 몸은 편안하나 마음이 결코 편한 건 아니다 ’라고 하더니, 곧 ’ 맘도 편하다 ‘고 번복을 했다. 


야간 조명에 한껏 취한 비투스 성당

아내가 맏며느리로서의 일에 부담을 가졌던 것은, 일도 일이지만 아내의 성격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데서 갖는 강박감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내 멋대로의 해석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내가 귀국하게 되었을 때 즈비벨무스터(Zwiebelmuster)인가 하는 유명한 체코 자기를 구입하러 여기저기를 다녔다. 벼룩시장에도 가보고, 아웃렛 매장에도 가보고 싸게 살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강구하더니만 결국은 아주 적당한 가격에 나온 식기 세트가 있다면서 한국에 사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일단 그것이 갖고 가기 거추장스럽고 무겁기도 하며 또 그냥 가정주부의 허영으로만 치부하여 싫은 기색을 역력히 했다. 그런데 아내가 하는 말이 안식년이 끝나고 귀국하자마자 곧 추석 상을 차려야 하는데 시댁 식구들에게 오랫동안 써온 구닥다리 식기를 올해도 또 꺼내기가 민망하다는 말을 했다. 나도 그 말이 그럴싸해서 기꺼이 동의를 했다. 추석날 새 체코 그릇에 음식을 담고, 폴란드 크라쿠프를 여행할 때 사뒀던 냅킨도 식탁에 깔아 놓으니 음식이 굉장히 빛나 보였다. 어머니를 비롯해 모든 식구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했다.


즈비벨무스터 자기




프라하의 아내는 귀국해서 다시 맏며느리로 돌아와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에, 그 일 년 간  휴가가 더 달콤하고 황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내의 평생 소득은 나와 공유한 프라하라는 추억의 재산일 게다. 지금도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 프라하가 등장하거나 그곳의 거리 지명만 들어도 반가워한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도 있지만, 긴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어느 봄날 둘이서 어느 나므네스티(광장)론가 같이 걸어가던 기억은 살아가는 내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시는 기억의 다른 이름이며, 시 읽기는 그 기억을 풍부하고 정감 어린 추억으로 만든다고 한다. 여행 이야기를 쓴다는 것 역시 그것이 실수담이든 뭐든 여행의 기억을 그 기억 이상의 달콤하고 풍요로운 추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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