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은 성악을 전공했는데, 젊은 시절엔 나의 모교이기도 한 인천의 고등학교에서 음악 교편을 잡기도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학생들이 음악실 칠판에 “제2의 카루소가 태어나다!”라고 써서 축하하기도 했다는데, 나는 테너 카루소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인간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콩쿠르에도 나갔는데, 청일점으로 참가했음에도 입상은커녕 예선에서 낙방했다. 얼마 후 중학 입시도 있어서 그 지겹던 피아노 공부는 그걸로 종을 쳤다.
그러나 커서는 그렇게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던 피아노를 가끔씩 심심할 때면 딩동 대곤 했다. 이 어릴 적 피아노 공부가 그래도 의미가 있었던 건 나의 거의 유일한 취미라 할 서양 고전음악 감상의 소양을 길러줬다는 점이다. 그래서 두 번째 안식년에 미국이 아닌 유럽 쪽으로 가게 됐을 때, 서양 고전음악의 본 고장을 찾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안식년으로 간 체코만 해도 서양 고전음악에서 만만찮은 위상을 갖고 있다. 카렐대학교와 붙어있다시피 한 ‘에스타테스’ 극장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초연된 곳으로, 이 극장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 무대이기도 했다. 교향곡 38번은 모차르트가 프라하 시민들에게 헌정한 곡인데, 당시 비엔나와 경쟁하던 프라하의 음악적 위상을 엿보게 한다. 그뿐인가? 블타바 강을 건널 때면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늦가을 모라비아 지방의 이름 모를 마을을 지나갈 때면 야나체크의 사색적인 음악이 유독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와 관련돼 유럽의 또 다른 매력은 어디서나 다양한 고전음악 버스킹이 열린다는 점이다. 아내는 고전음악에 그리 소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행 중 마주치게 되는 버스킹 공연은 흥미로워했다. 브라티슬라바를 여행할 때였는데, 옛날 시청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박물관의 안 뜰 회랑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연인 사이로 보이는 남녀였는데, 남자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여자는 그 옆에 서서 사랑스럽게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는 그 장면이 꽤 부러워 보였는지, 당신도 나를 위해 저렇게 피아노 연주를 해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남 앞에서 연주할 실력도 안 되지만, 악보가 없어서 연주하기가 곤란하다고 둘러다 댔다. 아내는 무척 아쉬워하면서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아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부탁을 했다.
이후 유럽이 아닌 캐나다 밴쿠버 여행을 할 때였다. 밴쿠버서 페리를 타고 인근 빅토리아 섬으로 건너가면 그곳에는 캐나다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 초기의 수도가 빅토리아 시티였듯이, 여기 빅토리아도 오래전부터 브리티시 콜롬비아의 수도였다. 그래서 이 섬에는 대영제국의 절정기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우리가 가본 크레이크데릭(Craigdarroch) 성이라는 곳도 그러했다.
이 성을 지은 주인은 식민지 시절 캐나다로 건너와 석탄개발로 큰돈을 벌고 철도사업에도 뛰어들어 이곳서 행세깨나 하고 살았던 이였나 보다. 그이는 번 돈으로 그의 출신지인 스코틀랜드의 성을 본 따,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며 호화로운 빅토리아 양식의 가구들로 이 성을 꾸미는데 호사를 부렸다. 지금은 이 건물이 개인 소유가 아닌 과거 캐나다의 역사를 돌아보는 박물관이 됐다.
4층으로 된 이 성 꼭대기를 올라가니 무도회장이 있는데 그곳 한편에는 1897년에 제작된 스타인웨이(Steinway) 피아노가 있었다. 원래 주인이 갖고 있던 진품은 아니라는데, 관광객들이 그 피아노를 쳐봐도 된다는 안내문이 일부러 쓰여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에는 성의 분위기와 걸맞게 고풍스러운 장정의 악보집도 놓여 있었다. 아마도 이 집안사람들이 쓰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내는 기회를 놓칠세라 동영상으로 찍어줄 테니 피아노를 한번 쳐보라고 했다. 아내가 내 피아노 실력을 정확히 모르는 게 문제다. 그러나 카메라 폰을 계속 들이대는 아내의 열망을 뿌리치기도 곤란했다.
성 안이라 실내도 어둡고 마침 주위에 사람도 없는 것 같아 일단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악보집에 ‘터키 행진곡’이나 ‘강아지 왈츠’ 정도 있으면 대충 치는 시늉을 하고 끝내려 했다. 그런데 수록곡들이 나로서는 꽤 고난도의 것들이었다.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간신히 발견한 것이 폴란드 대통령이기도 했던 파데레프스키가 작곡한 ‘미뉴에트’였다. 파데레프스키는 바로 이 스타인웨이 산 피아노를 애용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데, 그의 미뉴에트가 그중 수월해 보였다.
이 곡의 멜로디는 익숙히 아는 거였지만 처음 연주해보는 것이라 더듬더듬 몇 소절을 쳐나갔다. 그런데 악보의 다음 장을 넘기니 나의 초견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옥타브나 악보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가 온 것 같기도 해서 연주를 급작스레 멈추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 안의 다른 방으로 옮아갔다. 아내도 내 피아노 실력이 어떤 것인지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직후 누군가가 그 미뉴에트를 이어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내가 치는 걸 듣고 ‘저 정도라면…‥’ 하고 자신감을 얻어 연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모른 척하고 다른 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중년의 서양인 부부가 우리한테 다가왔다. 부인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뭐라고 얘기하는데 아마 나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는 얘기인 듯싶었다. 나는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 남편 되는 작자는 마치 내가 버스킹을 한 것인 양,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냥 장난으로 한 행동이지만 자격지심에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내는 여행 갔다 온 후에도 피아노 전공을 한 내 여동생에게도 내가 연주하는 것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주려고 해서 기겁을 했다. 『다시, 피아노』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있다. 저자의 직업은 영국 가디언 신문의 편집국장인데,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쇼팽의 발라드에 도전해서 1년 내내 이 곡을 연습하다가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는 죽을 쑤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이야기해놓은 책이다.
나도 퇴임 후엔 발라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쉬운 곡이라도 연습해볼까 생각도 하는데, 아마도 작심삼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누구는 그냥 피아노를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아무리 쳐도 실력이 느는 기색이 없으면 결코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잠이 안 올 때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아내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아내가 황홀해하는 것을 공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