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과 함께 월북 작가들의 해금 조치가 시행된다. 덕분에 남한에는 이들 작품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이뤄진 한국문학 연구의 성과도 봇물같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당시 1910년대 소설사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1910년대 소설 하면 당연히 이광수의 『무정』(1917)이 그 중심에 서있다. 그런데 당시 소개된 북한의 연구는 「슬픈 모순」(1918)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작품을 『무정』보다 훨씬 비중 있게 다뤘다. 슬픈 모순!? 바로 그 직전까지만 해도 소설의 제목이 ‘혈의루’, ‘은세계’, ‘구마검’이니 하여 구닥다리 제목이었는데 이런 모던한 제목의 작품도 있다니 신기했다.
「슬픈 모순」은 1918년 『반도시론』이라는 잡지에 실렸다. 이 작품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 출장을 내 국립도서관을 갔다 왔다. 국립도서관은 『반도시론』 잡지를 소장하고 있었지만 더러 결호가 있었고 공교롭게도 「슬픈 모순」이 실린 2월호 역시 없었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셈인데, 논문을 쓰자면 이 작품은 꼭 확인해봐야 했다. 국내 잡지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이를 수소문해 연락해보니, 그 잡지의 존재 여부는 알려주지 않고, 마침 잡지를 보관할 센터를 건립코자 자금을 모으는 중인데 기부금을 내면 마음껏 열람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적지 않은 액수인 데다 잡지의 유무도 불확실해 포기했다. 그러던 중 풍문으로 북한의 잡지 『조선문학』에 원본은 아니지만 그 작품이 전재돼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지금은 『조선문학』이 영인본으로 출간돼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1989년도에 개관한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 가야만 확인이 됐다. 그것도 책자가 아닌 마이크로필름 자료로 봐야 했다. 『조선문학』은 북한 ‘조선 문학가동맹’의 기관지로 1946년부터 발간된 잡지인데 「슬픈 모순」을 찾기 위해 창간호부터 살폈다. 각 호의 목차부터 확인해갔는데 작가인 ‘양건식(梁建植)’의 이름이 ‘량건식’으로 돼있어 하마터면 놓칠 뻔도 했다. 그 작품은 1964년 6월호에 가서야 나타났다. 자료 복사는 허용됐지만, 마이크로필름을 복사하는 독일산 기계가 수리를 위해 해외로 나가 있어 그림의 떡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노트에다 사진을 찍듯이 옮겨 적어왔다.
북한은 「슬픈 모순」 원문의 철자법을 자신들의 맞춤법으로 고쳐 놓았는데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내용이 혹시 변개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가령 주인공의 방안에 노동복 입은 고리키의 반신 초상화가 걸려 있는 장면 묘사가 나온다. 고리키는 레닌의 동지로 소비에트 러시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선도했던 작가다. 1910년대 우리 소설에 그가 등장한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당시 이광수 자신의 일기에도 고리키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한다. 논문을 쓰고 난 한참 후 모 대학 도서관에서 서고 정리 중 이 작품의 원본이 실린 『반도시론』 잡지가 결국 발견됐다. 확인해보니 북한이 그 내용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슬픈 모순」에 대한 북한의 해석은 그들의 정치 이념과 문학관에 맞춰 다소 과장돼 있다. 이 작품은 소설의 꼴도 채 갖추지 못한 수상문과도 같은 소품이나, 북한은 비판적 사실주의 소설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북한의 평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일까? 『무정』은 물론 당대 최고의 작품으로, 과도기에 처한 지식인의 내면의 세계를 아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무정』의 주인공에겐 아쉽게도 어두운 식민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비해 「슬픈 모순」의 주인공은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현실에 대해 비관적이며 우울함과 번민 속에 빠져 있다. 『무정』이나 「슬픈 모순」의 주인공이 똑같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그 현실에 반응하는 태도나 모습이 대조적이다. 「슬픈 모순」은 『무정』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기는 하나, 『무정』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기만적 낙관주의를 학생들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