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일 뿐 아니라 문학 쪽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긴 작가다. 그녀의 단편소설 「경희」(1918)는 근대 소설사에 등장한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이라 하겠는데, 이 시기 이광수, 김동인 등의 작품보다는 차라리 이 「경희」를 중등교과서에 실으면 더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경희」는 작가 나혜석의 자전적 소설 같은 작품인데 동경 유학생인 경희가 여름방학 때 귀국해서 집안 식구들과 겪는 일들이 주요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핵심 사건은 이제 공부는 그만 하고 시집을 가라는 아버지와, 이를 거부하고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주장하는 경희 사이의 갈등이다.
그런데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펼쳤던 경희 이건만, 아버지 말에 그냥 순종해 좋은 곳으로 시집가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일말 후회하면서 밤새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경희는 배운 여성임에도 이광수 소설의 지식인 주인공들처럼 젠 체하면서 누구를 훈계하려 들지 않아 아주 마음에 든다. 방학 귀국길에 집안 여종의 애들에게까지 장난감 선물을 챙기는 마음 씀씀이를 보면 소설 속 인물이지만 정겹고 사랑스럽다.
나혜석은 「경희」에서 봉건적 인습에 맞서는 신여성 경희를 경쾌한 필치로 그리고 있지만, 이 작품이 발표되기 불과 몇 년 전 오빠의 친구이자 동경 유학생이던 한 시인과 열렬한 사랑을 했고 그 시인이 폐병으로 죽으면서 크나큰 아픔을 겪는다. 나혜석이 비통한 심경에 잠겼을 즈음 그녀에게 연정을 품은 몇몇의 문인 유학생들이 접근했던 것 같은데 그중 대표적인 이가 이광수다. 이광수가 이를 공개적으로 발설한 적은 없지만 그의 몇몇 소설들에서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나혜석으로 추측되는 여인과 사랑을 했으나 그녀의 집안의 반대로 실연당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소설이 허구이기는 하지만 소설 바깥의 여러 다른 정황들도 감안해볼 때 이광수가 나혜석을 짝사랑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이광수가 나혜석과의 사랑 이야기를 소설 소재로 삼은 건 크게 탓할 바는 아니다. 단지 이를 그려낸 방식이 솔직하지도 진실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 시기 이광수 단편에서 사랑의 이야기는 아주 낭만적으로 미화되며 남자 주인공은 실연을 당하고 비탄에 빠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과 실연의 과정이, 어차피 민족을 위해 일하고자 결심한 주인공이 거쳐 가야 했던 하찮고 부질없는 것으로 평가절하 된다. 어떻게 보면 민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실패한 연애를 호도하려는 비겁한 모습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이광수 소설에서는 열정적 연애의 진실도 의심스럽고 사랑을 버리고 민족을 위해 나선다는 명분도 허망하게 보인다.
이에 비해 나혜석 소설에는 자신의 연애 체험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나혜석은 나중에 오빠가 역시 주선한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신혼여행을 신랑과 함께 옛 애인의 묘지로 찾아가 비석을 세우고 돌아오는 파격적 여행으로 대신했다. 이 일화도 본인이 직접 피력했다기보다는 김동인이나 염상섭이 이를 소재로 비아냥대듯이 쓴 소설을 통해 더 알려진 것 같다. 정작 나혜석은 자신의 글에서 죽은 애인을 끝까지 간호하지 못했던 회한의 감정을 스쳐 지나가듯이 얘기했을 뿐, 그와 관련되거나 이를 연상케 끔 하는 작품은 남기지 않았다.
당연히 나혜석 작품에는 이광수 소설에서와 같이 낭만화된 연애의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희」는 일본에 가서 공부까지 하고 온 신여성이(당시 동경의 여자 유학생은 10명이다.), 이광수처럼 ‘자유연애’니 ‘민족계몽’이니 하며 요란스레 떠들기보다는, 배운 여자로서 일상 안에서 어떤 다짐과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보여준다. 나혜석 문학은 이광수에 비해 문학사적으로 거창하지는 않지만 거짓이 없고 진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