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와 척진 사이는 아니지만 나혜석 문학의 매력을 얘기하려다 보니 자꾸 이광수 얘기를 꺼내게 된다. 이광수의 초기 작품 중에 「어린 벗에게」(1917)라는 단편이 있다. 이 작품은 소위 일인칭 소설로 주인공인 ‘나’가 벗에게 보내는 세 통의 편지로 이뤄져 있다. 당시로서는 참신한 형식이라 할 수 있는 편지 글을 통해 실연을 당한 남자 주인공이 비탄의 열정을 드러내고 있어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상당히 호소력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작품에 ‘나’를 실연시킨 여인이 나혜석이라는 소문이 있고, 앞서 말한 대로 나혜석을 모델로 한 것으로 짐작되는 이광수 소설은 이 작품 말고도 세 편 정도가 더 있다.
「어린 벗에게」의 ‘나’는 와세다 대학 재학 시절, 친구의 누이를 알게 되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로부터 기혼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동생과 절교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연을 당한다. 이후 ‘나’는 중국 상해 등지로 떠돌다가 병상에 눕는데, 그곳서 뜻하지 않게 옛 연인을 다시 만나고 그녀의 정성 어린 간호로 소생한다. ‘나’는 이러한 사연을 비감에 젖어 고백하면서, 한편으론 비분강개한 어조로 자유연애를 가로막는 조선의 봉건적 인습을 타파해야 할 것을 강변한다. 급기야는 주인공은 인습에 얽매여 사는 조선이 너무 싫고 자기 역시 조선인임이 부끄러워 외국으로 도망치다시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토로한다.
나혜석이 이 작품을 읽었는지, 또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이 자신임을 의식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이듬해 발표한 아주 짧은 단편 「회생한 손녀에게」(1918)는 이광수의 「어린 벗에게」를 마치 패러디한 작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린 벗에게」는 앞서 말했듯 실연당하고 병상에 누운 유학생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회생한 손녀에게」는 고단한 유학생활에 지쳐 역시 병상에 누운 유학생 소녀가 등장한다.
그런데 나혜석이 이 작품에서 정작 초점을 맞춘 것은 병든 유학생 소녀가 아니라, 그 소녀를 병에서 회생시켜준 ‘고추장과 깍두기’다. 소설 속의 ‘나’는 병상에 누운 후배를 위해 마치 할머니가 손녀에게 해주듯이, “구진 새우젓에 맵디매운 고춧가루를 버무려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해서 고린내가 풀풀”나는 깍두기를 담근다. 깍두기는 당시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야만의 음식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므라이스와 빵, 카레라이스와 미소시루” 보다는 “어두컴컴한 오지항아리에 솜씨 없이 울쑥불쑥 담은 깍두기의 짭짤한 말국이 뱃속에 가득 차야 소화도 잘 되고 속이 든든해진다.”면서, 병상의 소녀는 결국 “깍두기로 영생(永生)하게” 되었음을 선언(?)하고 천연덕스럽게 작품을 끝맺는다.
나혜석의 이 작품이 이광수의 「어린 벗에게」를 패러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자유연애니 실연이니 하고 눈물 찔찔 짜며 절망을 흉내 내는 이광수 소설의 남정네들이 나혜석은 한심스러워 보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병상에 누운 유학생 소녀에게 새우젓과 고춧가루로 깍두기를 담가주는 체험적이며 건강한 이야기를 통해 위선적이고 나약한 남성 지식인들을 비판코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참고로 「어린 벗에게」의 병상에는 감귤과 우유가 놓여 있어 깍두기와 아주 비교가 된다. 내 어렸을 때만도 귤과 우유는 귀한 것으로 1910년대에는 더 말할 나위 없었겠는데, 이광수는 폼 나게 그걸 병상에다 배치해 놓았다.
이광수 등의 작가가 계몽이니 민족이니 문명개화니 하고 떠들 때 어떻게 나혜석은 소설 속에다 엉뚱하게도 깍두기 얘기를 꺼낼 수 있었는지 그 발랄한 상상력이 신기하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야 당연히 음식 얘기 같은 건 꺼내지도 않았을 터고, 당시 문인들 역시 문학의 언어로 이러한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텐데 말이다. 나혜석 문학은 담론의 권위를 가정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언어의 계급에서 과감히 탈주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