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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Feb 16. 2020

요코하마 ‘복음 인쇄소’로 가는 길

오래전 와세다 대학에서 일본 내 ‘조선문화연구회’가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세미나가 끝난 후 카페로 이동해 뒤풀이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는 일본의 대표적 한국문학 연구자인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도 참석했다. 한중 수교 이전인 1985년 중국 용정에 가서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발굴하기도 했던 오오무라 교수는, 그날도 카페로 이동하면서 와세다대 북문에 위치한 최두선(최남선의 동생), 현상윤 등 유학생 문인들이 머물던 하숙집과 대학 앞쪽의 카프(KAPF) 동경지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일부러 안내해 데리고 갔었다.   


오오무라 교수는 우리 일행에게 세미나도 끝났는데 다음날은 무엇을 할지 물어보았다. 내 경우 백화점 쇼핑도 하고 인근 온천지를 가고도 싶었지만 그런 얘기를 꺼내기가 다소 민망해 머뭇거렸는데, 오오무라 교수는 요코하마에 있는 ‘복음(후쿠인) 인쇄소’를 답사해보면 어떻겠냐며 애써 주소와 약도를 알려줬다. 복음 인쇄소는 앞서 얘기한 이광수, 나혜석 등의 글이 실린 유학생 기관지 『학지광』과 최초의 문학 동인지인 『창조』 등의 잡지들이 인쇄된,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초기 한국 근대문학의 산실이라 할 만한 데다. 그런데 굳이 그곳을 가기가 망설여졌던 것은 인쇄소 건물이 현재 남아있는 것은 아니고, 그 옛터를 찾아가는 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음날 우리 일행은 ‘시부야’서 동횡선(東橫線)을 타고 요코하마를 향했다. 막상 열차에 오르는 순간, 왜 동경 유학생들은 한 시간씩이나 걸려 요코하마까지 가서 인쇄를 맡겼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수업 중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인쇄비용이 싸서 그랬던 거 아니겠냐는 소박한 대답을 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요코하마 여행이 시작되며 내 나름의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요코하마 역에 하차하니 동경과 달리 태평양의 너른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어오는데, 내게 요코하마의 풍경은 어쩐지 아주 낯이 익었다. 


내 고향은 인천인데 어린 시절 인천서 보던 풍경이 바로 요코하마 풍경이었다. 인쇄소 터가 있다는 외국인 거류지 성당을 찾아 올라가는 언덕길은, 인천 성공회 교회(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다!)를 지나서 만국(자유)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과 분위기가 아주 흡사했다. 또 그곳서 항만을 내려다보니 해안선과 평행하여 격자형으로 뻗은 길이 인천 해안동, 항동 길 그대로였다. 시내 곳곳에 개항장 풍취를 느끼게 하는 양풍의 건물, 세관창고 역시 인천에서 익히 보던 건물들이다. 외국 상인들이 몰려와 살던 요코하마 개항장이 인천 개항장으로 재현된 셈이었다.


만국(자유)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인천 성공회 교회(출처: 인천일보)


요코하마의 옛 외국인 거류지가 위치한 언덕 동네에는, 마치 태평양 건너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선교사들이 묻힌 외국인 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미국, 캐나다 등지서 동아시아 선교를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 선교사들이 처음 도착한 곳이 요코하마 항구였으리라. 이곳은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각처로 선교를 떠나는 선교사들의 베이스캠프인 셈이었다. 선교 군단의 필수 무기는 각 나라말로 된 복음서 즉 성경이고, 이는 이곳의 복음 인쇄소가 조선어 성경을 발간하기 위해 우리말 활자를 잘 갖추고 있었던 이유다. 한때 이곳 인쇄소에 취직하기도 했던 작가 염상섭은 “인쇄소 직공 중에 조선인은 없었으나 뜻도 모르는 언문 활자를 별로 틀리는 자가 없이 집어내는 일본인들의 숙련”에 놀라웠다는 회고를 한다.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 위 선교사들이 묻힌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 

우리는 오오무라 교수가 적어준 주소와 약도에 의존해 한나절 요코하마 사내를 헤매다시피 하면서 힘들게 복음 인쇄소의 옛터를 찾아내 그곳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잘못 찾아 딴 데 가서 사진을 찍고 왔던 것이 아닌가! 허탕을 친 셈이나 1910년대 조선인 유학생들이 요코하마 복음 인쇄소까지 찾아가 자신들의 잡지를 맡긴 이유는 확실히 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문학작품을 읽는 공부도 재미있지만 작품의 현장을 찾아가 그 현장의 아우라(?)를 느껴보는 것도 가슴 벅차오르게 하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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