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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Feb 23. 2020

발가락이 닮았네!

학생들 앞에서 될 수 있으면 특정 작가에 대한 호불호를 얘기하지 않으려 하나, 김동인 문학은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구석이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최근 페미니즘 쪽에서 바라본 김동인 문학을 읽으면 왜 김동인을 그동안 그리 생각해왔는지 좀 더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일례로 김동인은 약자로서의 여성을 그리나, 그 안에는 알게 모르게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또는 혐오의 시선이 감춰져 있다.  


「배따라기」(1921)에서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시동생과의 불륜을 의심받고 자살한다. 아내는 남편도 인정하듯이 “품행이 나쁜” 여자는 아니다. 단지 “아무에게나 말 잘하고 애교를 잘 부리는” 성격의 여자다. 남자 입장서 보면 아내는 끼 있는 여자고 이로써 화를 자초한 셈이다.   


「감자」(1925)의 ‘복녀’가 중국인 왕 서방과 매춘을 시작한 것은 건달 남편을 부양키 위한 호구지책의 하나였다. 그러나 복녀가 새 여자를 얻은 왕 서방을 투기하자 칼부림으로 죽임을 당한다. 김동인 소설에서 여자가 욕망의 주체가 되는 순간 가차 없이 죽거나 죽임을 당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떠나서라도 김동인은 근본적으로 문학을 장난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지녔다. 소설이 재미도 없이 진지할 수만은 없는 것이지만, 그의  「발가락이 닮았다」(1932)는 이러한 점에서 김동인을 또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중학교 때 국어시험에 이 작품의 희한한 제목을 써보라는 단답식 문제가 나와, 어떤 애가 ‘발가락이 닮았네!’라고 써서 틀리자 이의제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 인물 M은 당시로서는 노총각의 나이였던 32세에 늦은 결혼을 했다. 그가 늦도록 장가를 안 든 이유는 성병에 걸렸기 때문인데, 그는 성병으로 애를 가질 수도 없었다. 그런데 M은 결혼한 지 이태쯤 되는 해 아내가 아이를 낳는다.(아내의 외도!?)


M은 아이를 몸소 안고 의사 친구를 찾아가서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라고 안타까이 친자 증명(?)을 하는 것으로 작품이 끝난다. 당시 문단에서는 김동인이 이 작품의 M을 염상섭에 빗대어 풍자했다는 소문이 있어 떠들썩했다. 그러나 염상섭은, 서른두 살에 늦장가를 갔다는 사실 말고는, 이 소설의 인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염상섭이 그 이전에 「출분 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1929)라는 작품을 썼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김동인의 아내가 가출한 실제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김동인의 아내는 남편이 방탕, 아편, 기생 놀음 등으로 파산하자 못 살겠다고 딸을 데리고 가출을 했다.


동인은 염상섭이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 소재로 삼은 것에 분풀이로 「발가락이 닮았다」를 쓴 것이 아니었나 싶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참, 싱겁기 짝이 없고 우스꽝스러운 소설도 다 썼네!’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발가락이 닮았다」를 특별히 부정적으로 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이 작품을 다시 만났다. 식민지 시기 중국서 항일혁명군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외다리 불구자가 된 ‘김학철’이라는 조선족 소설가가 있다. 국내서도 그의 소설이 다수 출간됐는데, 나는 그중 그의 자전적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작가가 소년 시절 고향인 함경도 원산을 떠나 중국 전선으로 가서 겪는 여러 사건들을 고난의 역정이지만서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그중 전장에서 사망한 일본군 소속 조선인 지원병의 배낭에서 우리말 단편소설집을 우연히 발견하는 얘기가 있다. 그 책에서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기발한 제목의 단편을 읽는다. 작가가 어떤 이인지도 모르면서 그 작품을 읽고 일변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어지간히 한심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김학철은 혼자서 생각했단다. “망국의 비운은 아랑곳없이 이따위 너절한 소설들을 쓰고 있다니!”    


조선족 작가 김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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