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역사소설 『전쟁과 평화』(1863~67)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전쟁을 그린다. 혹시 톨스토이가 조국 러시아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전쟁의 허구성과 함께 이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러시아도 프랑스도 아닌 민중이며, 역사는 이 민중 의지가 반영된 역사의 법칙을 찾아내는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톨스토이는 이를, 대귀족의 상속자이지만 사생아로 태어난 ‘피에르’라는 경계인적 인물과 귀족 집안의 영애지만 민중적 생명력을 갖춘 매력적인 ‘나타샤’ 등의 인물들을 통해 그려낸다.
『전쟁과 평화』를 보면서, 올해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지만, 한국전쟁을 그린 그와 같은 역사소설이 있는지 쉽게 떠올려지지 않는다. 러시아와 한국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민족적 분단이 아직도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그려내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리라.
한국전쟁의 기원은 식민지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가까이로는 1948년 제주 4·3 사건과 거기서 비롯된 여순반란사건 등이 이미 전쟁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4·3을 그린 작품 하면 제주도 출신 작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8)을 곧 떠올린다. 4·3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하던 시절,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이 작품이 독서계 안팎에 불러일으킨 화제의 기억이 생생하다. 현기영은 이 소설로 혹독한 필화를 겪지만 계속 4·3 소설을 발표하고 이후 다른 몇몇의 작가들도 이와 함께한다. 이들 대부분은 4·3을 제주도민의 수난, 혹은 상처에 초점을 맞춰 그리다 보니, 『전쟁과 평화』와 같은 큰 스케일의 역사소설로 나아가진 못했다.
이러한 아쉬움을 풀어주는 작품이 역시 제주도 출신의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이 쓴 『화산도』다. 오랜 세월의 작업 끝에 1997년 완성한 이 작품은 대하소설의 분량으로 일단 역사소설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원작이 일본어로 돼있어 번역된 텍스트로 읽어야 하지만, 소위 자이니치 작가가 썼기에 역사를 보는 북도 남도 아닌 경계인으로서의 고유한 시각도 나타난다. 이 작품은 뭣보다도, 『전쟁과 평화』가 피에르, 나타샤, 안드레이 등의 인물을 창조했듯이, 4·3을 보여주기 위해 매력적인 인물들을 창조해낸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두 인물이 제주도 남자 ‘남승지’와 ‘이방근’이다. 남승지는 4월 3일 시작되는 ‘무장봉기’가 실패하리라는 예감을 갖고 섬에서의 탈출도 꿈꾸지만, 젊은이다운 정의감과 제주도민에 대한 끝없는 연민으로 봉기에 가담하는 교사 출신의 가난한 지식인이다. 이에 비해 이방근은 무장봉기의 한계를 날카롭게 직시하며 따라서 그에 매우 냉소적이나, 끝내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데서 무력감과 자괴에 빠지는 부르주아지 지식인이다. 남승지가 상대적으로 낭만적이고 따뜻한 감성의 인물이라면, 이방근은 아주 이성적인 그러나 허무주의적인 인간으로, 4·3을 대하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감과 길항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방근의 여동생으로 서울로 유학 가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도 이유원과, 산으로 가는 남승지의 스쳐가는 듯한 짧은 사랑은 이 소설의 비극성을 배가시킨다. “시에 대한 가장 진실된 설명은 바로 그 시 자체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결국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하는데, 문제는 작품이 꽤 길다는 점이다. 무려 12권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시간이 없으면, 내 생각이지만 무장봉기가 일어나는 부분까지 읽어도 된다. 전체의 절반 정도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작가 역시 이 긴 소설을 끝까지 긴장감을 갖고 쓰기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너무 높아, 유혹하는 듯한 해변의 물거품이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선 모든 게 정지된 것처럼 보여. 시간의 영원함이랄까.”
“길은 어느새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고, 빛나는 바다에서 짙은 바다 냄새가 몸을 감싸며 물씬 풍겨 왔다.”
눈이 시린 제주의 풍광이, 비극적 인물들과 같이 하기에, 슬프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