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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Apr 05. 2020

염상섭 문학 속의 ‘돈’ 이야기

아내는 대학 다닐 때 서예 반원이었다. 전시회를 갔는데, 윤동주의 산문시 「소년」을 한글 고체로 정갈하게 써놓았다. 한때 아내를 그 시의 ‘소년’같이 순수한 이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친정 상속문제로 불만 비스름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걸 보고, 이 세상 돈에서 자유로울 이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비록 돈이 인간에게 절실한 문제일지라도 문학에서 돈 관련 이야기를 진지하게 취급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이런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시작되는 부분은 다소 인상적이다. 가난한 주인공은 전당포 노파를 찾아가 전당 할 물건 값을 갖고 세세히 흥정하고, 고향 어머니가 보내준 돈의 사연을 아주 시시콜콜히 액수까지 밝혀가며 얘기하여, 돈에 몰린 자신의 처지를 절박하게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 스스로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써야 할 정도로 평생을 돈 때문에 시달렸다고 하니, 이런 사정이 작품에도 반영된 것 같다. 그가 이렇게 돈과 사투를 벌였기에 역설적으로 영혼의 문제에 더 치열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우리 소설사에서 치사한(?) 돈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또 이를 통해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 보여주고자 한 작가가 염상섭이다. 염상섭의 「전화」(1925) 같은 작품은 그의 대표작 「만세전」·『삼대』 등과는 달리, 민족의식·사회의식 등의 이념 문제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전화」는 서울서 운송업 영업을 하는 주인공이 부인의 옷가지 등을 전당 잡혀 삼백 원에 놓은 전화가 며칠 새로 오백, 칠팔백 원으로 뛰어올라 이를 되팔며 상당한 차익을 얻게 되는 얘기다. 지금으로 말하면 소위 프리미엄 얘기인데, 「전화」는 식민지 현실과는 관계없이 어느덧 자본주의적 관계로 접어든 당대의 현실을 착잡하나마 경쾌하게 보여준다.


식민지 시대의 가장 뛰어난 소설임에 누구나 동의하는 『삼대』(1931)도 어찌 보면 생명 없는 돈이 주인공이다. 대지주 조의관이 임종을 하려는 시점에서 유산상속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의 극대화와 이와 관련된 인간 심리의 묘사는 이 소설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삼대』에서 유일하게 작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주인공 격의 인물인 ‘조덕기’조차 돈의 위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교토3고생으로 교토 제대 법학부에 진학해 형법 관계의 공부를 한 후 변호사가 되려고 한다. 이는 돈이나 입신양명 따위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식민지 상황에서 자신이 민족운동에 직접 뛰어들 수는 없기에, 대신 변호사가 되어 그런 운동가들을 뒤에서 돕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덕기는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제치고 자신에게 물려준 ‘금고 열쇠’와 ‘유언 상속장’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 사력을 다해 붙든다. 덕기는 그러한 재산의 위력으로, 식민지 공안당국조차 사회주의자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자신을 쉽사리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험한다.


작품이 끝날 때,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옥살이 끝에 죽게 된 노(老) 운동가가 고무공장에 다니던 그의 딸 필순을 덕기에게 부탁하자, 그는 “필순 부친이 딸을 자기의 돈에게 부탁한 것이지 돈 없는 덕기였다면 하필 덕기에게 부탁하였으랴 하는 생각을 할수록, 마치 돈을 시기하고 질투하듯이 반문”한다. 유부남인 덕기는 난봉꾼 아버지와 달리 필순에게 나름 애틋한 애정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상섭 소설에서 낭만적인 사랑은 전개되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 대개 남녀관계는 결국은 돈에 얽힌 치정(癡情) 문제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대』에서 주로 이념 문제를 얘기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돈에서 빚어지는 인간 타락뿐만 아니라, 돈에서 결코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숨김없이 드러내 인간 삶의 현실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나는 대학 때 염상섭을 읽으면서 어른이 돼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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