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은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을 무대로 세 편의 소설을 남겼다. 사람들은 이를 강원도 영동 지역과 대비해 ‘영서 삼부작’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중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메밀꽃 필 무렵」(1936)이다. 이 작품은 중등 교과서뿐만 아니라, 한때 대학 국어 교과서의 단골 수록 작품이었다.
「메밀꽃 필 무렵」이 나름 매력이 있는 작품이지만, 교과서의 총아가 된 데에는 ‘교과서적 인습’이라는 게 작용한 점도 있다. 교과서적 인습이란 교과서가 진취적 연구 결과와 관계없이 늘 이미 잘 알려진 글이나 사실을 모아 놓는 것을 이른다.
실제 「메밀꽃 필 무렵」은 명성에 비해 구성과 주제가 빈곤하며 동화의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이에 비해 나머지 두 작품, 「개살구」(1937)와 「산협」(1941), 특히 후자는 작가의 최후의 작품으로 「메밀꽃 필 무렵」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원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막상 우리 학생들에게 이들 소설을 읽히면 근친상간, 불륜 등의 소재 때문에 ‘막장드라마’라고 고개를 저으며 ‘비호감’을 드러낸다. 「메밀꽃 필 무렵」도 서정적으로 미화되어 그렇지, 그런 요소들이 적잖이 있다.
「개살구」의 주인공 ‘김형태’는 평창 진부 오대산에 산줄기나 가지고 있던 덕분에 벼락부자가 된다. 오대산에 채벌장이 들어서면서 박달나무 시세가 올라, 산에서 벤 나무를 우차에 실어 주문진 항구에 부려 놓으면 철로 공사가 있는 이웃 항구로 실어 나르는 덕에 순식간 ‘돈벼락’을 맞은 것이다.
형태는 번 돈으로 인근 강릉서 첩을 데려 오는데, 그녀는 한 해를 못 넘기고 고향서 사귀었던 남자와 도망을 친다. 이에 그는 서울까지 가서 미인 색시를 구해 오나, 이번에는 뜻밖에도 아들과 눈이 맞는다. 분을 삭이지 못한 형태는 아들은 물푸레나무로 몰매를 쳐 실신케 하고, 여자의 얼굴은 인두로 지진다. 이후 아들은 서울로 도망치나, 형태는 이미 마음이 돌아선 여자를 이러다 영영 잃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허탈감에 빠진다.
「산협」의 주인공 ‘공재도’는 봉평의 부농으로 그 세가 당당한데, 불행히도 자식이 없어 애를 태운다. 그는 자식을 보려고 애쓰나, 원래 그는 생산을 할 수 없는 남자다. 재도는 원주 문막 나루로 가 소를 팔아 원주댁을 색시로 데려온다. 그녀는 본래 대장장이의 여편네인데, 대장장이가 소가 탐나서 아내를 재도에게 팔아 버린 것이다. 원주댁은 아이를 낳지만, 물론 이 아이는 대장장이의 애다. 한편 그의 본처도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백일 불공을 드리고 뜻밖에 아이를 갖는데, 실은 아내가 절에 갈 때 동행한 시댁 조카와 관계해 생기게 된 애다.
학생들은 독후감을 쓰면서 욕망의 끝이 보여주는 덧없음과 환멸을 얘기하며, 욕망은 절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글쎄, 절제될 수 있는 욕망이란 이미 욕망이 아니지 않나? 욕망에서 빚어진 이러한 인간세상 한판의 소란스러움과는 달리, 이효석 소설에서 강원도 산골의 자연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대비된 평화로운 무욕의 공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최근 포스트 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 연구는 강원도 자신의 고향을 형상화한 이효석에 대해 또 다른 시각에서 비판적이다. 식민주의자들이 그리는 피식민지 ‘향토’는 본능과 야만이 있고 윤리의식이 부재하는 곳이다. 하지만 향토는 근대화에 지친 이들에게 본향으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서정적 공간이기도 하다. 경성제대서 영문학을 전공한 식민지 지식인 이효석은, 마치 식민지배자처럼 향토를 때로는 매혹의 장소로, 또 때로는 미개하고 위험한 곳으로 의미화한다. 서정성과 야만성이 공존하는 이 향토에는 서구를 흉내 내려는 작가의 ‘식민지적 무의식’이 투영돼있다.
「개살구」에서 “어금니에 군물을 돌게 하는” 개살구가 익어가는 강원도 산골은 서정성이 넘치면서도 성적 일탈, 불륜 등의 욕망이 뒤끓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곳이다. 앞서 얘기했던 김유정의 강원도 산골과는 사뭇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