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안」을 읽으며 「기생충」을 떠올리다

by 양문규

소설가 박태원의 외손자가 영화감독 봉준호라는 사실이 지금은 널리 알려졌지만, 오래전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참, 씨도둑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30년대 작가 중 박태원만큼 영화라는 매체에 자각적인 이도 없었는데, 카메라로나 구현할 수 있는 영상의 세계를 소설의 언어로 꾸며내는 그의 솜씨가 여간 아니었다. 또 박태원의 작품들은 도시빈민의 생태를 귀신같은 솜씨로 그려내는데, 봉준호 작품들에서도 그러한 성향이 다분하다.

게다가 그러한 도시빈민의 세계를 익살스러운 시선으로 그려내는 솜씨마저 둘이 아주 비슷하다.


봉 감독은 도시빈민 등의 세계를 재현하면서 세부적 사실, 소위 ‘디테일’의 충실을 기해 ‘봉테일’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박태원 역시 그에 못지않다.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으레들 그러하듯이”라고 시작되는 「골목안」(1939)에는 도시빈민들의 비천한 일상들을 여러 일화를 통해 그려내는데, 그중 뒷간(화장실) 일화가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골목 안에는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지만, 가난한 이들에도 층이 있어 주인이 황금정(을지로)의 어느 화재보험 회사에 다닌다는 ‘불단집’은 그 동네서는 웬만치 사는 편이다. 불단집이란 밤이 되면 컴컴한 골목 동네서 그 집에만 외등을 달았다 해서 부르는 말이다. 그 집은 안쪽 터가 부족한 탓에 변소를 문전에 뒀다. 그러다 보니 골목 밖에서 일부러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있어 골목 안의 공동변소 감이 됐다. 그래서 뒷간을 늘 맹꽁이자물쇠로 채워놓고, 불단집을 드나드는 이웃 할머니가 이를 관리한다.


어느 날 할머니가 자기 집으로 가려다 보니 뒷간 자물쇠가 안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이웃집 애가 똥을 눈다 해서 열어주곤 그만 잊었다 생각하고, 이어 그 애의 아비가 들어가 있는 줄은 모르고, 자물쇠를 채운다. 뒷간 안의 남자는 당황했으나 몰래 들어간 것이 떳떳지도 못한 탓에 낮은 소리로 우물우물한 것이, 가는귀먹은 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가버려 시간 반을 갇혔다 나온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를 동정하는 양하면서 놀린다. “온 어쩌면 한 시간 반씩 들어가 있으면서, 문 열어달란 소리두 뭇 질렀어. … 아이, 냄샌들 오죽했을까?”


「골목안」은 하층민의 비천한 일상의 이야기를 익살로만 끝내지는 않는다. 「기생충」이 계층 간 메울 수 없는 경제적, 문화적 격차의 고발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파국을 예고하듯이, 「골목안」은 가난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도시빈민의 계급적 상황을 슬프게 보여준다. ‘순이’의 연애 사건은, 작가가 역시 코믹한 어조로 그려내긴 하지만, 가슴이 아리다.


골목 동네의 가난한 ‘집주름’(복덕방) 딸 ‘순이’는, 학교 친구 오빠인 ‘문주’와 격에 맞지 않는 연애를 한다. 문주의 아버지는 외과 전문의로 한때 부회 의원도 지낸 수십만 자산가이기 때문이다. 감상적 문학소녀 순이는 자신을,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까닭에 애처롭게 순정이 짓밟히는 문학작품 속의 비극적 주인공으로 상상한다. 신경쇠약으로 학교를 휴학 중인 문학소년 문주는, 순이의 용모도 용모지만, 그녀가 가난한 환경 가운데서 그 형 되는 사람이 카페 여급을 해 버는 돈으로 간신히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을 알면서 오히려 더 사랑이 깊어진다.


둘의 연애는 말할 필요도 없이 문주네 집안의 개입으로 파국으로 끝나는데, 작가는 하층계급 소녀에게 정신 나간 부르주아 집안 출신의 심약한 청년을 은근히 야유하고, 이러한 청년에게 철없는 순정을 쏟는 순이를 통해 계급의 장벽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도시빈민의 절망을 그린다.


문주가 순이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변소 밑씻개’로나 쓰라며 비웃는 ‘카페 걸’ 순이 언니는 이러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아는 셈이다. 순이 아버지는, 딸내미 일로 문주네 집안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선, 막내아들 소학교 학부형 모임에 가서는, 자식 자랑을 늘어놓으며 거짓 허풍을 떠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도시 빈민의 절망을 더 강하게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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