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작가 이상과 관련된 일화를 얘기해주신 적이 있다. 이상이 다방에서 한 여자와 맞선을 보게 됐는데, 얼마나 긴장하고 수줍어했던지 테이블 찻잔 옆에 놓인 각설탕을 더러운 손으로 계속 만지작거리다 시꺼메지자, 다방 여종업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설탕을 치웠다는 얘기다.
나는 이 일화를 선생님이 어디서 주워듣고 얘기해주신 걸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상의 ‘절친’인 박태원이 소설로 쓴 「이상의 비련」(1939)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박태원은 이 말고도 도처에서 친구 이상을 소설 속의 인물로 등장시켰다. 그것도 대개가 주로 이상이 여인들을 쫓아다니다가 바람을 맞거나 실연을 당하는 내용인지라, 도대체 박태원 같은 친구를 뒀다가는 개망신당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학과에 나와 오랜 동안 같이 지내온 동갑내기 선생이 한 분 있다. 한때 학내 문제로 언쟁을 벌이고 2년간 말도 안하고 지낸 적도 있지만, 둘이 ‘베프’인 건 학생들도 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점잖게 덕담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고, 서로 간의 약점을 갖고 장난도 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농담을 주고받아 주위 사람들이 ‘저 나이에…’ 하며 혀를 끌끌 찰 정도다. 비교할 바는 아니되, 이런 우리 둘 사이로, 이상과 박태원의 관계를 막연히 추측해볼 뿐이다.
1930년대 소설가들은 이전과 달리 동료 작가들을 모델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사적인 일상을 소설로 만든다. 박태원뿐 아니라 이상도 작가 김유정을 모델로 소설을 썼다. 좀 유식한 말로 하자면 작가들이 자기반영적 성향이 강한 소설을 쓰고 때로는 소설의 창작과정 자체를 그리는 ‘메타소설’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박태원은 하필 그중에서도 이상이 여자들을 쫓아다니다가 실연당하는 이야기들을 주로 쓴 셈인데, 「애욕」(1934)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에는 이상뿐만 아니라 박태원 스스로도 소설 속의 한 인물로 등장해, 이상이 모던 걸을 쫓아다니다가 온갖 망신을 당하는 사연들을 아주 신나서(?) 얘기한다. 심지어 이상이 여인에게 보낸 연서를, 그 여인이 다른 놈팡이들에게 넘겨 그들이 그것을 낄낄대며 낭독하고, 우연히도 박태원이 그걸 엿듣게 되는 대목도 나온다.
당시 소설에서, 인텔리들이 빈둥대며 모던 걸을 쫓아다니고 카페여급과 시시덕거리고 농담하는 일탈 행위들을 그리는 것은, 어찌 보면 사회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1930년대는 1931년 만주사변, 37년 중일전쟁, 41년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다. 전시체제로 치닫는 시기였지만, 한편으론 전시 자본주의가 가져온 기형적 호황으로 홍역(紅疫)과도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가 “躑躅(철쭉꽃)처럼 爛漫(난만)”(정지용)하게 번지던 시대다.
박태원 소설에서 이상과 같은 인물들의 연애는, 실행력도 없고 미숙하기 짝이 없고 실연으로 끝나며 이 모두가 희극적으로 그려진다. 이는 1930년대 일제 하 질주하는 파시즘적 통제와 산업화의 효율성, 그리고 그 안에서 ‘생산적인 인간’이 되라는 사회정치적 압력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유신체제가 시작되던 시절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국기 게양, 하강 때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길 가던 모든 이들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그런 파시즘적 분위기가 싫어 삐딱하니 특히 여학생들을 의식하면서 혼자만 걸어가다가 동급생에게 맞을 뻔한 일도 있다. 혹시 박태원과 이상도?
그건 그렇고 실제 이상과 박태원 사이엔 카페여급을 놓고 소설과도 같은 사건이 있다. ‘쓰루’라는 카페의 여급 ‘권영희’는 처음엔 이상의 애인이었다. 그러나 ‘정인택’이라는 소설가의 자살 소동으로 이상이 양보해 결혼은 정인택과 한다. 이상은 일찍 죽고, 이후 정인택, 권영희, 박태원은 북쪽으로 갔는데 북한서 정인택이 죽자 권영희는 박태원의 부인이 된다. 박태원은, 그의 본부인 즉 봉준호 감독의 외할머니를 미처 데리지 못하고 북쪽으로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