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은 해방 전 작가들 중 이광수, 염상섭 등과 함께 가장 많은 소설 작품을 남긴 작가다. 단 그는 이광수, 염상섭과는 달리 단편소설 쪽에서 일가를 이뤄,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불리기도 한다. 북한에서도 한때 그를 “조선의 모파상”이라 일컬었다는데, 글자 그대로 주옥과도 같은 60여 편의 단편을 제작했다.
그의 단편들은 주제도 주제이지만 문장과 형식미가 뛰어나 ‘스타일리스트’로 대접받곤 한다. “빗물 어룽진 서재”의 국화를 예찬하며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다.”라는 문구는 멋들어지다. 그런가 하면 “서양 소녀와 같이 명랑한 카네이션” 등의 표현에는 재치도 엿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언어나 형식에 치우쳐 사회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쓴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고 그런 쪽에서도 탁월한 작품들이 많다. 그럼에도 순전히 내 개인적으로는 지식인 또는 중년 작가의 로맨스를 그린 「그림자」(1929), 「석양」(1942) 등의 작품들에 눈이 간다. 「석양」은 고적한 옛 도시 경주를 배경으로, 대학을 나와 집안 골동품 가겟집 일을 돌보는 아름다운 처녀와 중년 작가의 로맨스를 그린다. 해운대에서 처녀와 헤어지며 바라보는 해변의 석양이 너무나 속히 황혼이 돼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지막 장면은 감미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이태준의 소설은,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어느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산다는 것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밤길」(1940)이라는 단편이다.
행랑살이하는 주인공은 처자식을 주인집에 맡기고 인천 어느 곳의 새 집 짓는 공사장 일군으로 나선다. 남자가 일이 꼬여 품삯을 제대로 못 받아 집으로 속히 돌아오지 못하자, 살 길이 막막해진 아내는 애들을 주인집에 버리고 도망간다. 주인집이 애들을 데리고 공사장에 나타나는데, 애지중지하던 막내아들은 이미 병이 골수에 든 상태이다.
아이가 죽어 나가려 하자, 공사장 동료들이 남의 새 집을 짓는 일에 궂은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말에 죽어 가는 아이를 안고 남은 딸자식들을 데리고 빗속을 나온다. 병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밤길 빗속을 헤매다 끝내 죽은 아이를 물속 땅에 묻고, 남은 딸자식들 때문에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는 아비의 심정은 읽는 사람의 가슴까지 찢어지도록 처절하게 그려낸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이태준이 현실에 나 몰라라 하고 순수문학만을 지향했던 작가는 아닌 게 확실하다. 다시 말해 그가 해방 후 북쪽으로 가게 된 것도 아주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이태준은 한때 북쪽에 가서도 창작활동을 활발히 했지만 결국 김일성 정권에 의해 숙청당해 결과적으로는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작가가 된다.
혹자는 이태준이 해방 직후 좌익의 꼬임에 넘어가 북쪽으로 갔다고 하지만, 내 생각엔 딱히 북쪽이 좋아서 갔다기보다는 해방 직후 친일파가 득세하는 등 남쪽의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어찌 됐든 결국 이태준은 북쪽으로부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되었는데, 이태준이 숙청되고 난 이후, 북쪽은 그의 「밤길」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북한은 이태준이 하층민들의 현실을 비관적으로 그리면서 그 속에서 문학적 미를 찾으려 하는 태도가 습관처럼 박여있다고 비난한다. 「밤길」에서 보이는 절망적 페이소스는 이태준의 전 작품을 짓누르는 무서운 병독이다. 실직한 한 노동자가, 가난에 몰려 남편을 배반하고 아이를 버린 채 도망한 아내를 찾아 헤매며, 모진 절망과 주림을 못 이기고 갓난아이를 매장하는 이야기의 구성은 독자에게 극단적인 절망과 비탄과 자포자기의 감정을 유포시킨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태준 문학을 상당히 왜곡해서 평가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북한의 비판을 보면서 문학의 진정한 역할이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새삼 반문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