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는, 일 세대 여성작가라 할 나혜석이 태어난 지 딱 10년 후인 1906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이들 모두 페미니즘(여성주의) 문학을 지향했지만, 구체적 내용에서는 상당히 다르다. 두 사람의 성장 배경부터가 다르다. 수원이 고향인 나혜석은, 그녀의 집 땅을 밟지 않고는 지금의 동탄 땅을 지나갈 수 없을 정도의 대지주 집안 출신이었다.
반면 강경애는 가난한 농민의 딸로, 아버지는 젊은 시절 대부분을 지주 집 머슴살이로 보냈으며 늘그막에 겨우 얼마간의 땅을 얻어 가정을 이뤘다. 그나마 강경애가 네 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돈은 있으나 환갑이 지난 불구 노인의 재취로 갔으니, 말이 개가지 몸종 같은 신세로 간 셈이다.
나혜석은 인텔리 신여성의 현실을 그렸으나, 강경애는 그녀의 대표작 『인간문제』(1934)에서 여성 공장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린다. 남자가 아닌 여성의 날카로운 눈으로 계급의 현실을 본다. 가령 남성 작가들은 공장 내 성폭력의 문제를 단순히 피해자적 시각에서만 그려낸다.
이에 반해, 강경애는 여공이 섹스관계로 공장 감독과 공모자가 되어 회사의 노동자 분열 책략에 말려드는 현실도 포착해낸다. 또 여공과 인텔리 운동가의 계급 차이에서 빚어지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도, 『인간문제』를 상투적인 노동자 소설로 읽히게 하지 않는다.
강경애는 그 밖의 작품들에서는 주로 노동자가 아닌 하층계급 여성의 삶을 그리는데,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모성’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소금」(1934)은 간도로 이주한 조선 여성의 수난을 그린다.
주인공 ‘봉염 어미’는 간도에 와서 우여곡절 끝에 남편과 아들을 잃고 딸 봉염과 중국인 지주 집에 얹혀살던 중, 지주에게 겁탈당하고 임신 상태에서 딸을 데리고 쫓겨 나와 출산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여 해란강에 띄워 내버릴까 생각하나, 막상 원수의 애를 낳고 아이에 대한 강한 모성애를 느낀다.
이후 봉염 어미는 호구지책으로 ‘젖어미(유모)’로 나서는데, 정작 자신의 두 애는 보살핌을 못 받아 역병으로 죽는다. “남의 새끼 키우느라 제 새끼를 죽인단 말이냐?”라고 절규하나, 막상 유모 자리서 쫓겨나 젖 먹여 키우던 애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자 그 애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모성은 비단 자기가 낳은 자식만이 아니라, 기른 자식에까지 확대되는데,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경험이다.”라는 나혜석의 말이 생각난다. 최근 공선옥의 소설도 이와 같은 맥락에 놓인다.
「소금」에서 봉염 어미가 남의 집 헛간을 빌려 홀로 해산하는 장면은 처절하다. 출산 끝에 피비린내를 품은 역한 냄새가 헛간에 가득하고, 봉염 어미는 미역국 생각이 간절하여 주인이 헛간에 갖다 놓은 파단에서 파를 꺼내 우적우적 씹다가 침이 턱 밑으로 흘러내리면 얼른 손으로 침을 몰아넣는다. 침이라도 목구멍으로 삼켜야 허기와 갈증에서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성만의 독특한 체험이 표현됐을 뿐 아니라, 한계에 다다른 궁핍함 속에서 여성이 맞닿은 비극적 현실이 실감 있게 제시된다.
성별로 따지자면 빈곤은 여성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이른바 ‘빈곤의 모성화’는 강경애의 「지하촌」(1936)에서 극치를 이룬다. 「지하촌」은 극도의 궁핍에서 가사노동과 농사일이라는 이중의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농촌여성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그린다. 작가 박완서가 해방 후 비로소 한글을 깨치고 처음 읽은 한국소설이 바로 이 「지하촌」인데, 이 작품을 읽다 먹은 것을 다 토했다고 한다.
문제의 장면은 부스럼이 심한 갓난애의 머리에 쥐 가죽을 씌우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애를 돌볼 겨를이 없는 어미가 과연 그리 해봤는데 며칠 후 쥐 가죽 밑에서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한 남성 원로작가는, 한국의 단편소설을 엄선해 영역한 단편집이 출간될 때 「지하촌」이 선집에 포함돼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는데, 이와 달리 박완서는 이 작품을 평생에 잊지 못할 강한 인상을 심어준 작품이라고 술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