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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태백

by 무누라

'니 그거 타봤나?', '뭐?', '엘리베이터.'


보잘것없는 탄광촌 주공아파트 단지의 꼬맹이들 사이에 엘리베이터라는 신문물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동네 주변 상가며 아파트들 모두가 5층을 넘지 않는 앉은뱅이들이었기에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엘리베이터를 타본 적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학교에서도 엘리베이터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나, 엘리베이터 타봤다.', '뭐? 어떻게? 너네 집은 주택이잖아.', '그냥, 몰래 가서 한 번 타봤어.'


학교 너머에 무려 15층짜리 아파트가 새로 생겼다고 한다. 하늘 높이 치솟은 아파트에서 높은 층까지 올라가려면 계단으로는 너무 힘들어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한다고 했다. 그 점이 너무 부러웠다. 가끔씩 타는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타야만 한다니. 환상적이다. 천국에 대해 상상할 때면, 늘 맛있는 쫀디기와 계란 토스트가 가득해서 매 끼니마다 먹어야 하고 텔레비전에는 하루종일 만화영화만 언제든지 만화를 볼 수 있는 상황을 그리곤 했다. 여기에 천국을 오가는 엘리베이터를 놓아서 수시로 타고 다니는 그림을 추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타보고 싶었다. 아주 짧은 순간 잠시라도 엘리베이터에 내 몸을 싣고 싶었다.


'야, 거기서 엘리베이터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난 운 좋게 탔는데, 거기 조심해야 해. 경비아저씨가 있는데 걸리면 아주 혼쭐이 난데.', '경비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인데?', '너 경비아저씨 몰라? 저기 학교에 그 수위아저씨랑 비슷해.'


경비 아저씨라니 덜컥 겁이 났다. 경비 아저씨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겁이 났다. 군청색의 제복을 입고 일을 하시는 학교 수위 아저씨와 비슷한 느낌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비슷하게 제복을 입고 일하시는 경찰 아저씨가 연상되었고 그래서 더 겁이 났다. 제복 입은 아저씨들은 늘 두려운 존재였다. 언제라도 나를 잡아갈지 모른다고 늘 부모님께서 겁을 주셨기 때문이다.


'거기 사는 사람이랑 같이 가면 괜찮지 않을까? 누구 그 아파트 사는 사람 없데?'


있었으면 진작에 소문이 났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들 앉은뱅이 집에서 사는 아이들 뿐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몇몇 친구들과 새로 생긴 그 아파트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학교 앞에서도 그 웅장한 자태가 잘 보였기 때문이다. 다들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눈감으면 아파트가 사라질 것처럼 눈꺼풀을 꼿꼿이 세우고 돌진했다. 건물 하나로 이루어진 한 개동 짜리 아파트라 단지가 넓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아파트 어디에서도 정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잘 보였다. 우리 아파트 단지처럼 쪽문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쪽문을 낼 자리조차도 없어 보였다. 높다리 높은 아파트만큼이나 울타리도 높아 보였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동태를 살펴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경비 아저씨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슬그머니 아파트 정문까지 가보았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랬을 것이, 우리의 행색이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오그라들어서 한껏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을 치켜세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에 누가 봐도 이상했을 것이다. 대부분은 무슨 일인가 힐끔 쳐다보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 이내 고개를 돌려 지나갔다. 그러한 시선들을 뚫고 나름 살금살금 전진하는 와중에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니? 누구 찾으러 왔니?'


그 순간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발걸음을 돌려 도망쳤다. 상냥한 말투의 아주머니 얼굴에서 왠지 모르게 무시 무시한 경찰 아저씨 얼굴이 겹쳐져 보였다. 하필 그때 '너, 이렇게 맨날 말썽 피우다간 경찰 아저씨가 오셔서 잡아간다!'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날게 뭐람. 잡혀가지 않기 위해 전속력을 다해 내달렸고 학교 운동장까지 다다라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이 후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갈 엄두를 내질 못했다. 심약한 쫄보는 그 후로도 꾀 오랜 기간 동안 엘리베이터를 타보지 못하게 되었다.


국민학교 5학년에 올라가면서 우리 가족은 강원도 춘천시로 이사를 갔다. 태백, 고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도시였다. 이사 간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10층에 있는 우리 집에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었다. 처음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탄광촌의 탄가루들이 씻겨져 나가고 온기 가득한 대도시의 포근한 안개가 감싸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삶의 행복이 멀지 않았다. 물론 그 행복도 일상이라는 지루함이 자리 잡으면서 시나브로 잊혔지만 말이다.


언젠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는데 중간쯤에서 한 아주머니가 타셨다. 무언가 하고 계셨는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에 정신을 차리시고 급하게 올라타셨다. 그런데, 들고 계시던 핸드백에 뒤늦게 따라오다가 양쪽으로 닫히는 문 사이에 끼고 만 것이다. 보통 같으면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는데, 그때는 아주머니의 핸드백이 애매하게 내측 문쪽에 끼인채로 그냥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내측 문이 반뼘정도 열려있고 그 사이 핸드백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아주머니는 그 보다 더 애매한 자세로 문가에 서 있으셨다. 그 순간 아주머니는 핸드백 줄을 힘껏 잡아당겨서 끼여있던 핸드백을 뽑아내셨다. 문이 쿵 닫혔고 이어서 삐-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전등이 꺼져 완전한 어둠 상태가 되었다. 덜컥 긴장되고 겁이났다. 언젠가 천국이라고 느꼈던 엘리베이터가 이 순간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아~이씨, 아줌마! 그걸 그렇게 막 빼면 어떡합니까? 아~ 참내. 빨리 나가봐야 하는데 이게 뭐야 진짜!'


구석에서 함께 타고 가던 아저씨가 있는 힘껏 짜증을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저씨의 그 짜증을 듣자 긴장이 좀덜어지는 듯했다. 이 캄캄한 곳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리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고, 짜증 섞인 아저씨의 말투에서 위기의 긴장감보다는 일상에서 묻어나는 귀찮음이 느껴졌다. 아저씨는 손을 더듬어 능숙하게 비상호출 버튼을 누르셨다.


'아~ 여기요. OOO동 O호-O호 통로에 있는 엘리베이터인데요. 이러저러해서 갑자기 멈췄어요.'

'아, 예~ 얼른 갈게요.'


얼른 오신다던 스피커 넘어 아저씨는 한참을 지나서야 오셨다. 실제로는 짧았을지도 모른다. 암전속에 갇혀있으니 무한히 오래걸리는 느낌이었다.


'쿵! 쿵! 거기 계세요?'

'네~! 여기 있어요. 빨리 꺼내 주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강제로 개방되고 나니, 밖에서 우리를 구하러 오신 아저씨들은 우리들 발치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으로 절반 정도만 내려간 상태에서 멈춰진 애매한 상황이었다. 밖에서 잡아주는 아저씨들의 손에 이끌려 우리는 하나씩 빠져나왔다. 그 후로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누군가 급하게 타지 않는지 살피게 되었고 온전히 다 탈 때까지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게 습관이 되었다. 누가 보면 배려심의 화신이었겠지만 그 속내는 철저히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의 결정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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