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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들어오는 날

@태백

by 무누라

안도현 시인께서 물으셨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9살의 내가 답했다.

''저는 연탄재 말고 아직 안 탄 새 연탄을 발로 찼는데요, 얘는 뜨거운 적 없었으니까 괜찮을까요?''


태백의 주공아파트에는 연탄보일러가 있었다. 그때는 이 집 저 집 다 연탄보일러였다. 초저녁이 되면 엄마는 뒷 베란다에 가신다. 보일러를 열고 우리에게 뜨거움을 선사해주고 희끄무레해진 연탄재를 커다란 가위 같은 집게로 집어서 한편에 쌓아놓으시고 까맣고 반들거리는 새 연탄을 집어넣으신다. 덕분에 추운 겨울에도 뜨끈한 방바닥에서 몸을 지지며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시인의 일갈이 아니더라도 연탄 그리고 연탄보일러는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연탄이 타다 보면 일산화탄소가 나오는데 이게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실내로 들어오면 큰일이 난다. 가끔 동네 어르신들께서 삼사오오 모여서 말씀하실 때가 있다. '저~기, 어디 어디 사는 누구 할머니, 어찌 가신 줄 알아? 뭐긴 뭐야. 그놈의 연탄보일러가 말썽을 일으켜서 그만 가스에 중독이 되어서 가셨지.' 심심찮게 연탄보일러 사고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다음과 같이 말이 따라왔다. '아니, 근데 발견하자마자 빨리 동치미 국물 자시게 해야지 그 집 아들은 뭐했데?', '아이, 뭐. 마침 그날 밤 아들 내외가 처갓집에 갔었다지 뭐야. 동치미고 자시고 발견이 늦어져서 뭐 손 쓸 수도 없었다지.' 그렇다. 연탄보일러 사고에는 항상 동치미 국물이 있었다. 당시에는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에 있어서 동치미 국물 투입 골든 타임이 매우 중요했다. 너도 나도 빠른 동치미 투입이 생사를 가른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유독 연탄보일러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좀 더 커서의 일이지만, 아버지는 여느 집들 보다도 빠르게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꾸셨다. 그 후로 오랜 후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셨다. 내가 세상에도 나오기 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만나시기도 전, 아버지께서 한창 젊으실 때, 할머니께서 연탄보일러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연탄보일러 함부로 대하지 마라. 누군갈 뜨겁게 해주지만 잘못 대하면 차갑게 영영 차갑게도 한다.


그날은 새 연탄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단체로 연탄을 주문하면 연탄 장수 아저씨들은 트럭에 연탄을 잔뜩 싣고 와서 각 통로마다 가득가득 쌓아놓았다. 그리고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집집마다 연탄을 날라주셨다. 아니, 날려 주셨다. 지상에 있는 아저씨가 툭허니 던지면 베란다에 있는 아저씨가 살포시 잡으신다. 1층에서 5층까지 어느 높이로 던져져도 항상 살포시 잡으셨다. 멈춤 없이 돌아가는 관람차처럼 두 아저씨는 그 많은 연탄들을 각 가정까지 모셔다 주셨다. 그러나 그날 우리 집 앞에서는 그러 실 수 없으셨다.


처음에는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어린 시절 장난기의 발동이었다. 눈 내린 날 어딘가 조용히 눈사람이 서 있으면 괜히 가서 깨부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냥 한 개만 부셔보고 싶었다. 고 놈 생긴 게 참 잘 바스러지게 생기지 않았는가. 연탄장수 아저씨처럼 허공에다 던져보았다. 아차, 나는 살포시 받아주는 짝꿍이 없지. 바닥에 떨어진 연탄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거 엄청 재밌다. 너도 부서 봐.' 동생에게도 권하였고 동생도 흔쾌히 연탄 한 장을 던져서 부숴버렸다. 그렇게 공범을 만들었다.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던지기도 하고 굴리기도 했다.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잔뜩 쌓여있던 연탄들이 죄다 깨져 있었다. 어떤 건 애초에 구멍들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바스러졌고 좀 멀쩡해 보이는 것들도 귀퉁이 한 군데 정도는 깨져있었다. 누가 보면 저기 저 아파트 통로가 광산 들어가는 갱도 입구로 보였을 것이다. 어둑해지는 저녁만큼이나 나와 동생도 어둑해졌다. 그날 밤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엄마한테서 많이 혼나진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이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크면 평소와 반대로 행동한다고 하지 않은가. 그때 엄마가 그러셨던 것 같다. 연탄 괴물들과 전쟁을 치르고 온 우리 모습을 엄마는 사진으로 남기셨다. 디지털 카메라도 없던 그 시절, 굳이 카메라를 꺼내고 필름을 채워서 우리 모습을 찍으셨다. 그땐 몰랐다. 그 옛날의 잘 못에 대한 벌을 먼 훗날 받을 줄이야.


얼마 전 부모님 댁에 가서 주변을 치우다가 옛날 사진을 모아놓은 앨범을 발견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사진을 구경했다. 문제의 그 사진이 나왔다. 엄마가 그날 있었던 사건의 전모를 줄줄줄 읊으셨다. 두 며느리와 뭔 말인지도 잘 모르는 손주들 앞에서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 동안 아내가 그 일을 가지고 놀려댔다.


'아, 어머니.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이르다더니, 2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렇게 저를 꾸짖으시는군요. 이 아들 고개 숙여 사죄드리옵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kdk905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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