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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변천사

@태백

by 무누라

별볼것 없는 우리 집 자동차 변천사다.


처음 기억나는 차는 대우자동차에서 나온 까만색 로얄 살롱이다. 1980년대에 출시된 중형 세단으로 그 각진 모양새로 보나 우아한 이름으로 보나 여느 회장님 관용차로 손색없는 자동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끌고 온 까만색 로얄 살롱은 여느 회장님 만큼이나 늙고 낡아서 기품 있는 외관과는 어울리지 않게 시골 경운기 마냥 콜록댔다. 저~어기 어디 친척분을 통해서 얻었다고 하셨는데, 워낙 낡아서 그리 오래 타진 못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 까만 로얄 살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까망이를 타고 한적한 외곽을 달리고 있었다. 우로는 산비탈이 있고 좌로는 하천이 흐르는 날씨 맑은 어느 날이었다. 고즈넉한 풍경과 다르게 우리 까망이는 힘에 겨워 털털털거렸고, 이에 아버지께서 '차가 많이 시끄럽지?'라며 머쓱해하셨다. 목적지가 어디고 뭐하러 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딱 그 장면만 생각난다.


두 번째는 기아자동차의 회색 프라이드다. 역시나 중고차였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랫집 아저씨의 반강요 같은 설득에 넘어가서 아버지께서 구입하셨다고 한다. 거래가 완료되는 날 우리 가족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지인분들이 오셔서 같이 시승했던 기억이 난다. 신기하게도 인상적인 장면은 시승하기 전에 다 같이 차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휀다 아래쪽 바뀌를 감싸는 부분에 균열된 것을 복원한 흔적을 찾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아버지께서 아랫집 아저씨와 다시 뭐라 얘기를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 같이 차를 타고 시승했다. 쪼매난 차의 능력보다 많은 사람이 타서 싣고 가는 회색이나 타고 있는 우리나 다소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새 차다. 아버지께서 청록색 세피아 신차를 뽑으셨다. 정확히 언제 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세피아는 꾀나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했다. 우리 가족을 많은 추억의 순간으로 데려가 준 소중한 녀석이다. 세피아를 떠올리면 강렬하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버지 지인 가족들과 함께 어느 계곡을 놀러 갔다. 인근에 국민학교가 있어서 그곳 운동장에 다들 주차를 하고 계곡으로 내려가 놀았다. 한참을 신나게 놀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자리를 정리하고 차로 돌아와 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동네 꼬마 녀석들이 주차해놓은 차에 진흙과 모래를 뿌려 범벅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근방에 있던 다른 꼬마들의 제보로 범인들을 잡을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짓거리를 한 녀석들은 그 운동장 한 켠에서 놀고 있었다. 죄책감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른들께서 왜 이렇게 했냐고 추궁을 하니 그 애들은 그냥 차가 멋져 보여 샘이나서 그랬다고 했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다들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넘어가셨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옆에 다른 차는 진흙도 많이 묻었을뿐더러 창문도 살짝 열려 있어서 실내도 더러워져 있었지만 우리 집 청록이는 상대적으로 덜 더러워서 물로 슬쩍 씻어낼 수 있었다. 그 짜식들에게는 가장 구리구리해 보였다보다. 생각해보니 괜히 기분 나쁘네. 우리 청록이 도 멋진데.


그 후에도 몇 대의 자동차가 우리 가족과 함께했다. 이제는 나도 가정을 꾸려 쥐색 올란도를 끌고 있다. 우리 아이들 마음속, 기억 속에 좋은 추억들이 남도록 함께 여기저기 떠나자. 부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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