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아이들은 순수하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는 순수함이 묻어나기 때문에 우린 그들에게서 동심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순수함이 항상 착한 것만은 아니다. 때론 아이들은 너무나도 순진무구한 얼굴로 나쁜 행동을 한다. 물론 어른들이 봤을 때 나쁜 행동이다. 본인들은 나쁜 줄도 모르고 한다. 그러한 행위의 원천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본능이라고 하기에는 무얼 얻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행하는 나쁜 행동을 나는 그냥 악한 동심의 발동이라고 표현한다. 누가 봐도 나쁜 행동을 한다. 그러나 표정에 어두움은 없다. 오히려 밝고 즐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어른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사이코패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해가 된다. 아직 아이들은 사고, 생각, 마음 등 내면의 여러 가지가 조각조각 흩어져서 제 멋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내 나름 정리하곤 한다.
그 당시의 일은 지금 떠올려봐도 정말 끔찍하다. 악한 동심이 발동된 전형적인 모습이다.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과 무당개구리를 잡으러 갔다. 등은 진한 녹색이나 배는 선명한 주황색이고 전반적으로 까맣고 동그란 점무늬가 있다. 대략 어린아이 손 만하고 그렇게 날래지 않다. 그런 무당개구리가 한창인 시기였다. 가까운 개울가 근방 물이 고여있는 널찍한 웅덩이에 가니, 역시 놈들이 눈에 띄었다. 조용할 때는 찾기가 다소 어렵다. 그러나 막대기로 수풀을 때리거나 수면을 치면 놀란 녀석들이 펄쩍 뛰어오르고 주황색 배때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럼 녀석이 내려앉은 곳으로 가서 잽싸게 낚아채면 그만이다. 무당개구리를 잡을 때는 꼭 지켜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절대 눈을 비비면 안 된다. 동네 형들이 그랬다.
"야, 무당개구리 만진 손으로 눈 만지면 안 돼. 그 끈적끈적한 게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비잖아? 눈멀어~ 절대 비비면 안 돼!"
형들 말이니까 맞는 말이긴 할 테다. 그러나 얼마 전에 다른 친구가 무당개구리를 잡다가 실수로 눈을 살짝 만졌는데 장님이 되지 않았다. 그냥 눈이 따갑다고 난리를 피웠고 이거 눈먼 거 아니냐고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눈을 세게 비비지 않아서 그런 건가. 아무튼 그 친구는 이번 개구리 잡이 원정에도 함께하였다.
도롱뇽은 일단 찾기가 쉽지 않다. 찾는다 하더라도 제법 개구리들 보단 날쌔기 때문에 잡기가 쉽진 않다. 청개구리는 너무 작고 색깔도 온통 초록이라 찾기가 어렵다. 두꺼비는 크고 느리기 때문에 잡기는 쉬워도 잡지 않는다. 너무 무서울 정도로 못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이 있어서 피해야 한다. 두꺼비를 보면 피하기 바쁜데 왜 헌 집 주고 새집 달라고 친근히 노래하는지 모르겠다. 그에 비해 무당개구리 잡기는 식은 죽 먹기다. 열댓 마리를 잡아다가 비닐봉지에 넣어서 동네 놀이터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악한 동심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우선 몇 마리를 놀이터 모래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모래를 뿌렸다. 한두 번 뛰던 개구리는 이내 모래투성이가 되어 뻗어버렸다. '캭캭캭캭, 저것 좀 봐.' 우리는 좋다고 웃었다. 친구 중 한 녀석이 모래투성이 개구리를 시소에 태웠다. 그리고 반대편에 앉았다. 개구리가 높이 솟구쳤다. '우와, 장난 아닌데?' 너도나도 개구리와 시소를 탔다. 그러다가 한 개구리가 시소 밑에 떨어졌고 시소의 의자 부분이 그 개구리를 덮쳤다. 개구리가 터졌다. 말 그대로 터졌다. 그 순간 누구도 움찔하지 않았다. 그저 터진 개구리를 먼저 본 녀석들이 다른 녀석들에게 알려줄 뿐이었다. '야, 저거 봐봐 개구리 배때지가 터졌어!' 사실 터진 개구리를 전에도 종종 봤다. 개구리가 많이 보일 때쯤이면 차에 밟히고 치인 개구리들을 종종 보았다. 가끔은 동네 고양이나 다른 포식자들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찢기고 뜯겨버린 개구리도 있었다. 죽은 개구리를 보는 것이 드문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날 놀이터에서 배가 터진 개구리를 본 일이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시소를 타다가 시소에 눌려서 터져 버렸다는 것이 좀 새로웠다. 남은 개구리들로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도 탔다. 어느덧 우리의 옷과 손은 시커멓게 더러워져 있었다. 바닥도 좀 검게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저녁 만화 영화가 할 시간이다.
현관문을 열고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순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내 뇌리에 무당개구리는 없었다. 모래 뭍은 개구리, 배가 터진 개구리, 갖고 놀던 개구리 모두 놀이터에 두고 왔을 뿐이다. 어릴 때는 그랬다. 신기하게도 실컷 놀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날의 모든 일들은 따라오지 않고 잊혔다. 현관문이 쾅 닫히고, 새로운 저녁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늘을 또 뭐하고 놀았길래 이렇게 거지꼴이 됐어?"
"애들이랑 개구리 잡고 놀았어."
"그래 얼른 씻고 만화 봐."
"응, 엄마."
이제는 안다. 개구리를 그렇게 한건, 잘못된 행동이다. 잘못을 알았으면 지금이라도 사과해야지.
개구리야, 무당개구리야. 미안해. 나중에 또 보면 같이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