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부와와아아앙"
"야, 어디야? 어디?', '모르겠어. 가까운데 있는 것 같은데."
"야! 저기 개코형 뛰어간다. 쫓아가자!"
개코형을 일찍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우리는 울려 퍼지는 소리와 드문드문 흩어지는 냄새에 긴가민가 하지만, 그 형은 달랐다. 그는 냄새의 띠가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주 가느다란 냄새라도 그가 붙잡는 순간 달아날 수 없다. 그를 따라가면 얇은 냄새의 실이 털실이 되고 리본이 되었다가 금세 동아줄 만해 진다. 어느덧 그 냄새는 더 이상 선이 아닌 면이 되어 다가오다가 이내 입체로운 폭탄이 된다.
연막 소독 자동차, 일명 방구차가 나타났다. 야릇한 냄새. 일순간 엄마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소독차 연기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으니까 막 따라다니면 안 돼.' 순간 뇌보다 다리가 먼저 멈칫한다. 그러나 코를 타고 들어오는 그 냄새가 곧바로 뇌를 지배하고 꼭두각시가 된 뇌는 다시 다리를 채찍질한다. 냄새의 끈이 코를 타고 들어와 코뚜레를 뚫은 마냥 나를 끌고 간다. 옆에는 나처럼 코뚜레 뚫린 동네 꼬마들이 여럿 같이 끌려간다. 뒤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너도 나도 코를 벌리며 뚫어 달라고 난리다. 그렇게 동네 꼬질이들 모두 나와 전신 소독을 한다.
방구차가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휙 돌고선 근처 골목으로 간다.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 냄새가 여전히 내 코를 걸고 놓아주질 않기 때문이다. 코뚜레를 미쳐다 뚫지 못한 몇몇 아이들이 뒤쳐진다. 근처 사는 아이들이 조금씩 추가되기도 하지만 방구차가 황지동 끝자락을 향해 갈수록 남아 있는 아이들은 점점 더 줄어든다. 문득 불안감이 엄습한다.
"개코형, 이거 계속 마셔도 괜찮아?"
"야, 이거 많이 마시잖아? 피에 소독약이 남아서 여름에 모기가 안 문데."
"와~! 진짜? 좋은 거네?"
피에 소독약이 남아 흐르는 무시무시한 상황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모기가 안 깨문다는 말만 철석같이 알아듣고 다시 힘을 낸다. 이제는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온몸이 연기의 실타래에 휘감겨 눈이 멀어버렸다. 주위가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저 연기는 그저 소독약일 뿐일 텐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누가 혹시 몰래 다른 걸 탄 건 아닐까. 이것이 행복인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지금! 저 앞에서 연기가 날 부르고 있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제! 우린 앞을 향해서만 나가겠어.'*
"캘~록! 캘록! 캘록!"
갑자기 목이 탁 막히며 기침이 나온다. 입에서는 침이 코에서는 콧물이 흐른다. 연기를 많이 마셔서 인지 너무 오래 달려 숨이 차서인지는 모르겠다. 극도로 흥분하여 이성이 마비된 채로 달리다 순간 각성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계치를 넘어서 굴러가던 다리는 급격히 무너져 이내 털썩 주저앉는다. 여기 한 놈. 저기 한 놈. 그렇게 나까지 너대섯 놈들이 코뚜레에서 풀려났다.
"와~. 형! 여기 어디야? 완전 시골인데?"
"야, 우리 상장동까지 왔나 보다. 큰일 났네. 얼른 돌아가자."
즈그들이 사는 촌동네보다 더 촌티 나는 태백시 귀퉁이까지 가서야 정신을 차렸다. 우리를 이끌던 방구차는 이미 사라져 보이질 않는다. 그저 허상이었던 것인가. 그 조그만 트럭과 대포 같은 살포기는 무엇이었는가.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의 환영이었던 것인가. 아직 정신이 다 돌아오진 않은 건가. 다행이다. 촌동네라 돌아가는 길이 복잡하지 않구나. 엄마한텐 비밀이다.
*참고: 듀스, 우리는,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