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학예회 준비가 한창인 시기였다. 나는 꼭두각시 춤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기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짝꿍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작 하나를 연습한다. 여자아이는 바닥에 앉고 남자아이는 뒤에 서서 여자아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서로 고개를 돌려 왼쪽에서 한 번, 오른쪽에서 또 한 번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이때 중요한 동작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계속 까딱까딱하는 것이다. 눈을 마주치며 웃어야 하지만 난 웃지 않는다. 선생님의 지적에 애써 입고리만 올린다. 까딱까딱하는 두 머리는 엇박자를 낸다. 위에 있는 머리가 딴생각에 사로 잡혀 설렁설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작 둘을 연습한다. 바닥에 앉은 여자아이는 두 팔로 눈을 비비며 우는 시늉을 하고 남자아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뒤에서 여자아이 어깨를 주무른다. 여자아이의 우는 시늉이 너무 사실적이다. 어깨를 주무르기 싫다. 주무르는 척 툭툭 치기만 한다. 선생님께서 또 지적을 하신다. 동작 셋을 연습한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업고 서로 행복해하며 돌아다닌다. 힘들다. 짝꿍이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이 촌에서 살면서 쟤는 어찌 저리 잘 컸는지. 업힌 아이는 재밌어한다. 업고 있는 아이는 죽상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다가 이내 주저앉는다. 여자아이와 선생님의 핀잔을 듣는다.
다시 연습을 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은 죽을 맛이지만, 선생님께 혼나고 싶지는 않아서 꾸역꾸역 해낸다. 선생님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감정과 느낌이 사라진 율동을 한다. 꼭두각시 춤을 춰야 하는데 그저 꼭두각시가 되어 허우적거리고만 있다.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꼭두각시가 된 나를 불러 말씀하신다. '넌 왜 계속 로봇처럼 딱딱하게 율동하니?' 나 로봇 아닌데, 꼭두각신데. 흥칫. 속마음을 들킬세라 눈을 내리깔고 몸을 비비 꼰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겨우 한 마디 내뱉는다.
"저, 짝꿍이 싫어요."
결국 학예회 때는 다른 친구로 짝꿍을 바꿔서 공연을 했다. 실컷 연습 다 해놓고 이게 뭐람. 짝이 바뀐 네 아이 그리고 선생님까지 언짢은 상황을 초래하였다. 조금만 더 일찍 선생님께 말씀드릴걸 그랬다. 나에게서 '후회'가 묻어나는 가장 오래된 장면이다. 하나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다 지나간 일인데 말이다.
어렸을 때는 다들 그러는 거라고 어설프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39)는 30년 전의 그(9)를 철저히 변호하고자 한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당시 그(9)의 잘못을 꾸짖기에 앞서 그러한 행동이 초래된 근본, 즉 그(9)의 기질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그(9)는, 속으로는 싫고 짜증 나면서도 겉으로 내색 못 하고 자주 망설이는 유형으로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내(39) 기준으로야, 당시 행동은 본인의 우유부단함으로 여럿을 피곤케 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위입니다. 후회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시지만, 후회라는 건 뒤늦게 깨달은 바를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것일 뿐 아닙니까? 그 당시로 돌아가, 다시 그 상황을 맞닥뜨린다 한들 제 결정은 반복될 뿐입니다. 모든 순간의 선택은 내(9)가 했습니다. 나(9)는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고, 그때의 내(9) 선택 이외의 모습들은 결국 나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변호인, 늘어지는 개똥철학을 계속 듣기 힘들군요) 아, 시정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어설픈 선택과 모자란 모습들도 결국 내 일부라고 시인한다는 점입니다. 성장기 시절의 아주아주 소소한 어설픔에도 불구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단지 후회에 머물러 있다면 쓸데없는 걱정만 늘어질 뿐이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요소를 조금이라도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저(39)는 그저 다음에는 그러지 말고 더 나은 선택과 모습은 무엇일지 (아주 잠시나마라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그러고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못 하겠습니다만, 아주 조금은 그 빈도를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저니까요. 전 그런 저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하면 그만입니다. 저라도 좋으면 우리 사회에 티끌의 때만큼의 긍정적 요소는 발휘된 것 아니겠습니까!
삶은 선택의 연속일지언정 후회의 연속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지 말자. 나는 내 삶 속에서 꼭두각시 춤을 추는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