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딸내미, 아들내미와 냇가에 놀러 갔다. 조막만 한 잠자리채로 물고기를 잡는다고 성화다. 그러다 얼떨결에 새끼손가락만 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아니 잡았다기보단 건졌다. 휘휘 젓는 챔질에 어린 물고기가 딸려 들어왔다. 어항을 한참 들여다본다. 수시로 건져 올렸다가 내려놓는다. 비린내 나는 물고기 살결이 그리도 부드러운지 몇 번을 쓰다듬는다. 어린 물고기 녀석은 이내 배를 하늘로 쳐들고 힘없이 꼬리를 흔든다. 아이들은 물고기 속도 모르고 마냥 좋다고 까르르 거린다. 그리도 좋을까. 그래, 나도 한창때 물고기잡이에 미쳐있었지.
아버지께서 사주신 족대를 들고 집 근처 하천을 나선다. 20걸음 정도가 되는 폭에 대부분 무릎 높이의 개울이었다. 양 가에는 풀들이 우거져있었고 물은 제법 맑았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 족대를 댄다. 왼발을 바닥을 지지하고 오른발로 수풀 위를 마구잡이로 밟는다. 수풀에 숨어있던 물고기들이 놀라서 이리저리 도망치다 족대에 걸린다. 비늘이 가지런한 붕어나 몸뚱어리에서 반짝반짝 무지갯빛이 나는 피라미들이 잡힌다. 허접한 족대 한 번에도 너덧 마리가 잡힐 정도로 고기가 많다. 금세 가져간 어항이 꽉 찬다. 모래톱이 적당히 쌓인 곳에 적당히 둥그렇게 모래를 판다. 작은 조약돌들을 모아서 바닥을 메운다. 좀 더 큰 돌멩이들을 가져다 가장자리를 둘러찬다. 물을 채워 간이 어항을 만들고 잡을 물고기들을 쏟아붓는다. 피라미들은 금해 시들시들하다. 몇몇은 발길질에 혹은 수풀에 채였는지 비늘이 벗겨져 있다. 힘없고 못난 애들은 다시 보내준다. 실수로 실한 녀석 몇몇도 딸려 보낸다. 아이 손바닥만 한 붕어 몇 마리가 남는다. 질릴 때까지 족대 질을 한다. 수풀에 발목이 생채기투성이가 되었을 때쯤에야 따갑기도 하고 힘도 떨어져서 그만둔다. 잡은 애들 중에 예쁜 붕어 너덧 마리만 가져온 어항에 챙긴다. 간이 어항 위쪽으로 물길을 판다. 물길을 타고 냇물이 설설 흘러들어온다. 이윽고 간이 어항에 물이 넘친다. 넘치는 물을 따라 남겨진 물고기들은 제각각 흩어진다. 그 모습이 괜스레 우습다. 바보 같은 녀석들.
흠뻑 젖은 채로 집에 돌아온다. 가져온 붕어들을 어찌하나 싶다가 엄마가 금붕어를 키우시던 어항에 넣었다. 울긋불긋한 금붕어랑 잡아 온 붕어들이랑 제법 잘 어울려 다닌다. ‘엄마, 이제 어항에 물고기 죽으면 내가 잡아다가 채워놓을게.’ 제 눈엔 돈 들여 사 온 금붕어보다 제 손으로 잡은 붕어가 더 이뻐 보인다. 한참 동안 어항을 들여다본다. 금붕어 먹이도 뿌려줘 본다. 꽉 찬 어항만큼 내 마음도 넉넉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어항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엄마를 찾는다. ‘엄마, 금붕어들 꼬리지느러미가 다 없어졌어!’ 자세히 보니 덩치 큰 붕어들이 금붕어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쪼아댄다. 이미 꼬리지느러미가 다 뜯겨 제대로 헤엄도 못 치고 허우적거리는 금붕어들은 속절없이 당하기만 한다. 엄마의 잔소리가 폭발하기 전에 금붕어들을 건져낸다. 후다닥 나가서 냇가에 놓아주고 온다. 모두가 다 제자리가 있는가 보다.
지금은 춘천 고향 집 옆 냇가가 많이 달라졌다. 하천을 정비하여 깔끔해졌고 주변으로 산책로도 만들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간다. 달라진 하천의 모습 때문일까, 훌쩍 커버린 내 모습 탓일까. 하천에 들어가고픈 마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산책길에 징검다리를 건너던 딸내미가 하천 바닥에 꾸물거리는 다슬기를 보고 잡아달라고 성화다. 별안간 아버지께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시곤 냇가로 들어가서 다슬기를 잡아 손녀에게 건넨다. 한두 마리 잡고 그만두실 줄 알았더니만, 더 안쪽까지 가셔서 한 주먹 잡아 오신다. 걷어 올린 바짓가랑이는 벌써 젖어 있다. 딸내미를 업고 나도 냇가로 들어간다. 바짓가랑이 젖듯 행복에 젖어든다. 다 제자리가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