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대빵 큰 마시멜로다!"
차창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소리친다. 애 엄마가 단것을 차단해서 애들이 헛것을 보나 싶었다. 좌우로 논밖에 없는 외곽 도로에서 마시멜로 타령이라니. 아이들의 시선을 쫓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추수가 끝난 논에 하얗고 둥글둥글한 물체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당장 모닥불에 구워 먹고 싶을 정도로 마시멜로 같았다. 농기계의 발달로 추수와 탈곡이 바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남은 볏짚들은 바로 뭉쳐져서 비닐로 감싸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곤포 사일리지다. 대량 경차 한 대 만한 것들이지만 차창너머에서 멀리 보니 조막만 한 하얀 뭉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게 달콤하게도 보였나 보다. 그런데 어쩌나, 너희들이 아니라 소들이 군침을 흘려야 할 것들인데. 곤포 사일리지로 보관하면 날씨 변화에도 상하지 않도록 볏짚을 보관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적당히 발효도 시킬 수 있어서 좋다.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점이 많아 농민에게 유용하다. 상태 좋은 여물을 언제든 먹을 수 있어 소에게도 좋다. 구경하는 아이들에겐 잠시나마 재밌는 눈요깃거리라 즐겁다. 그러나 그 어린 시절 추억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게는 다소 아쉽다.
아파트 단지 동쪽의 2차선 도로 건너에는 넓은 논이 있었다. 그리고 추수가 끝난 논에는 마시멜로 대신 노적가리가 널려 있었다. 당시에는 거두어들인 볏단을 잘 쌓고 그 위에 초가지붕처럼 덮어서 보관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임시로 보관하다가 가져가 탈곡 및 도정했다고 한다. 여기보다 훨씬 시골에 이모가 살고 계셨을 때 놀러 간 적이 있다. 거기서는 짚단 한가득 창고에 넣어두고 새벽이면 가마솥에서 끓여 소여물을 만들었다. 장작 대신 지푸라기들로 불을 때서 가마솥을 데웠다. 요기에 일어나 마당을 나가면 여물 읽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했다. 창고 옆에는 불 때고 남은 잿더미를 쌓아놨다. 남자들은 거기다 소변을 보았다. 소변에 잿더미가 적당히 썩으면 비료로 쓴다고 했다. 남아도는 지푸라기로 새끼 꼬는 법을 배웠다. 손으로 오물 쪼물 잘 비비면 얼추 새끼줄이 되었다. 어른들은 새끼줄로 짚신도 만들고 그러셨다.
이모네서 봤던 노적가리가 내 앞에 있어 반가웠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친구들이랑 한바탕 놀기로 했다. 겉보기와 달리 생각보다 포근했다. 햇볕에 잘 말려지고 있어서 따뜻하기까지 했다. 지붕 위로 올라가면 얕은 동산 위에 오른듯했다. 맞은편 아파트는 여전히 하늘 높이 쏟아 있었지만, 노적가리 위 꼬마들은 제가 더 큰 양 으스댔다.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한쪽이 슬쩍 무너졌다. 무너진 부분은 나름의 미끄럼틀이 되었다. 미끄러지기보다는 구르기 일쑤였지만 재밌기는 매한가지였다. 신나게 놀다 기운이 떨어져서 집에 돌아갈 법도 한데, 아쉬운 녀석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흩어진 지푸라기를 만지작거린다. 시골에서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두어 번 만지작거리다가 얼추 새끼를 꼰다. 느슨하고 삐쭉삐쭉 못났지만 제 눈에 안경이다. 친구들이 너도나도 알려 달라한다. 다들 한쪽 끝은 발로 밟고 다른 쪽은 양손으로 비벼가며 새끼를 꼬아본다. 하다 보니 지푸라기를 덧대는 것도 가능해져서 제법 길쭉하게 새끼줄을 만든다.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새끼줄로 줄넘기를 한다. 엉성한 새끼줄은 몇 번 돌지도 못하고 이내 풀어져 버린다. 완전히 지쳐버려 모든 것을 팽개치고 볏단 위에 눕는다. 이야기책에서 나오는 ‘늦은 밤 외양간에서 하룻밤 묵고 가는’ 기분이 이러할까 싶었다. 이 정도 포근함이면 외양간이든 노상이든 하룻밤 지낼 만할 것 같다.
편히 누워 둘러보니 논 저 너머 교도소 입구가 보인다. 추수가 끝나 시야가 트여서 그런지 꽤 가까워 보인다. 교도소 관사에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야, ㅁㅁ이가 저기 관사에 산다고 그러지 않았어?"
"어, 맞아. 걔네 집 놀러 갈까?"
방금까지 퍼져있던 녀석들이 다 같이 뛰어간다. 벼가 가득할 땐 생각지도 못했는데, 추수가 끝나고 나니 뻥 뚫린 고속도로다. 신난다. 다음 놀거리를 찾아서,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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