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빙글빙글. 돌고 도는 나선형의 나사산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면 그저 제자리에 맴돌고만 있는 것 같다. 조금만 시선을 멀찌감치 놓고 보면 어느새 조금 전진해 있다. 때론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가벼운 탄력을 받아 신나게 돌다 보면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어느 순간 회전이 급격히 더뎌진다. 전진은 고사하고 오히려 뒤로 튕겨 나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온몸이 옥좨 온다. 숨이 막히고 갈비뼈가 바스러질 것 같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시야가 아득해진다. 순간 무수한 함성이 귓가에서 울린다. 나의 성장과 함께한 모든 이들의 소리 없는 응원이 울린다. 손끝부터 조금씩 힘을 준다. 손가락 마디를 구부리고 주먹을 쥔 뒤, 두 팔을 몸에 바싹 붙여 웅크린다. 하나, 둘, 셋! 한 번 더 하나, 둘, 셋! ‘빠지직’ 저 멀리에서 그들이 패배한 소리가 들린다. 마지막으로 하나, 둘, 셋! 상아탑을 뚫고 나간 세상 저편에서 더 두텁고 무시무시한 삶의 장벽들을 마주하며 이내 까마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