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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누라 Nov 01. 2023

Equality on Court

코트 위에선 모두 동등하다.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다년간의 밑밥 작업에 드디어 미끼가 반응했다.

[안녕하십니까. 농구 동아리 회장 OOO입니다. ~ (중략) ~ 우리 동아리의 지도 교수님이 되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대학 시절 내게 농구 동아리는 삶의 큰 부분이었다. 일주일에 3~4일은 체육관에 갔다. 여름 방학 때는 동아리 합숙으로 2주간 매일 운동을 했다. 학부 졸업 후 대학원 과정에도 주당 2~3일은 농구를 했다.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기르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학업 스트레스도 날리면서 정신과 마음을 정화하였다. 시합을 통해 상대와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팀 안에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렸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순간에 빛나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신께서 내게 주신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강의 중 학생들이 지루할 때면 예전의 농구 동아리 활동을 종종 이야기했다. 간혹 전공의 강의 자료에 농구와 관련된 내용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농담 삼아 학생들에게 물었다.


  “농구 좋아하거나 농구 동아리 활동하는 학생 있나요? 혹시, 사람 부족하면 저도 좀 불러주세요. 이젠 늙어서 잘 못하겠지만, 한 게임 정도는 비벼볼지도 몰라요.”



나도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질줄 아는 눈치가 있다. 학생들이 부담스러워서 ‘교수님’이랑 같이 농구 할 생각을 하겠는가. 나도 하자면 사회인 동호회 등을 알아보면 되었다. 그런데도 조금의 기대가지고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이유는 대학 시절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농구 하셨던 지도교수님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교수와 학생이 함께 하면 굉장히 어색하지 않을까 하겠지만, 결국 코트 위에선 모두가 동등한 한 명의 선수이기에 함께 땀 흘리며 뛸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그저 그때의 좋은 추억이 남아있었기에 나도 학생들과 함께 할 시간을 기대했다.    


답장을 보냈다.

[동아리 지도 교수를 수락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가끔 저도 한 게임 뛸 수 있도록 끼워줘야 합니다.]







동아리 활동에 처음 함께했다. 왠지 모르게 체육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매우 어색했다. 문을 여는 순간까지 내가 껴도 되는 자리인지 되물었다. 어색한 마음을 누르고자 음료수도 사서 가고 나름의 동아리 가입비도 냈다. 그리고 함께 게임을 했다. 죽을 것 같았다. 너무도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 아주 잠깐 뛰었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숨이 너무 차니까 시야가 흐려졌다. 게임의 절반은 눈을 감고 뛰거나 진배없었다. 드디어 첫 게임이 끝났다.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에 들려오는 목소리.


  “교수님, 다음 게임 뛰셔야죠.”


그들 나름의 배려였는지 본인들끼리 빠질 사람을 정하고 내게는 연속으로 뛸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뛰었다. 그렇게 몇 년을 농구 경기를 할 때 끼워달라 해놓고서는 고작 10분 뛰고 무너질 순 없었다. 마치 팔다리 관절이 서서히 분리되어 저만치 달아나는 것 같았다. 누가 보면 9명은 농구를 하고 1명은 홀로 허우적거린다고 했을 거다. 그러나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코트 위에선 누구나 동등하니까. 내가 1인분을 하지 못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채워야 한다. 내가 홀로 특혜를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권리가 되고 서로 간의 벽이 된다. 겨우겨우 첫 모임을 버텼다. 다음 날 아침, 온몸이 부서져 있는 줄 알았다. 그 후로 매주 하루는 모임에 참여하여 같이 운동했다. 덕분에 그동안의 업무로 지쳐있었던 심신이 나날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2학기 되어 동아리 주관으로 과 대항 시합을 한단다. 과별로 팀을 구성하여 치열하게 시합하는 학생들의 열정이 지난날 나의 열정을 일깨웠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여러 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지역 동호회가 모인 시합, 타 대학과의 학교 대학 시합, 과 대항 시합 등 영광의 순간도 아픔의 기억도 공존하는 빛나는 시간이었다. 아득히 먼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해하는 와중에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교수님, 심판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역시 예외는 없었다. 코트 위에선 동등하다. 그래, 이렇게 왔는데 구경만 할 순 없지. 옛 기억을 떠올리며 함께 뛰었다. 나라고 심판을 잘 보는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 장점이라면 항의가 적었다. 학생들이 심판을 보면 아무래도 같은 학우이니까 쉬이 따질 수 있겠지만, 교수라는 양반이 호각을 들고 있으니 항의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봐도 몇몇 오심이 있었지만, 그 또한 시합의 일부이기에 모른 척 넘어갔다. 무언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는 모습들이 멋있다. 그러한 열정이 그들 삶의 여러 영역에서 발휘되길 바란다.



  




여전히 나는 조금만 뛰어서 숨이 턱까지 차고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그럴 때면 한 줌의 특혜 없이 빡세게 뛰는 그들이 살짝 밉다. 하지만 부탁한다. 내가 정말 지치고 힘들어 나가떨어질 때까지 ‘Equality on Court’를 주장하시라. 우린, 바스켓 맨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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