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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Jan 09. 2021

Ep.4 믿어지지 않는 얘기

2020년 12월 8일

와이프와 함께 기관지 조직 검사를 받으러 강남 세브란스 병원으로 아침 일찍 출발했다. 어제와 달리 주차장은 그나마 혼잡하지 않았지만 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차들로 채워져 있었다. 조직검사를 받으러 안에 들어갔는데 수면 마취제를 통해 검사하는 경우 보통 별도 방에서 조명도 약간 어둡게 조성하는 게 일반적인데 형광등 불빛이 훤하게 켜져 있고 넓은 공간에 침대 몇 개와 검사기구들이 놓여 있어서 마치 의학 서스펜스 드라마에 나오는 듯한 세팅이 연상되었다.


심지어 옆에서 검사를 기다리는 어떤 아저씨가 간호사 분에게 "여기서 검사하는 게 맞아요?"라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나 역시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었다.


정말 이렇게 불이 환하게 켜진 공간에서 내가 잠이 들 수 있을까라는 괜한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수면 마취제에게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괜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검사 중간에 목이 너무 아파서 기침이 심하게 나왔다. 기관지 깊숙한 곳을 후벼 파는 느낌이 너무 고통스럽고 숨이 막혀서 마취에서 깨어날 지경이었다. 결국 마취제가 추가 투입되었고 다시 잠이 들었다.


고통스러웠던 검사가 끝나고 와이프와 함께 삼성병원으로 향하였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와이프에게 내 진료를 담당했던 담당 의사가 와서는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묻더니 또다시 "나이도 젊은 사람이.."라는 멘트를 반복하면서 내가 워낙 고통스러워해서 조직을 충분히 떼어내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조직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조직을 다 떼어내지 못했다는 궤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예정된 진료시간 보다 일찍 서울 삼성병원에 도착해서 와이프와 함께 병원 주변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올여름부터 내내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하느라 가족들과 함께 있는 가져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오게 되어서야 와이프와 넉넉하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애들은 부모님께서 오셔서 봐주신 덕분에 와이프와 오롯이 둘이 함께 산책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1시간 정도 함께 걸었더니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검사를 받은 직후라 음식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는데 와이프에게 점심 안 먹어도 괜찮은지 물었더니 별생각 없다고 대답했다. 옆에서 괜히 나 때문에 밥도 못 먹는 것 아닌가 하는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진료시간이 다가올수록 서서히 긴장감이 밀려왔다. 여기서도 똑같은 결과를 전달받는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에 애써 담담함을 유지하면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PET CT 영상을 보자마자 왜 이 검사를 받았냐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봤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가 왜 PET CT 검사를 받았느냐였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PET CT 검사는 일반적으로 암 환자들에게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고 투입되는 방사선 량이 워낙 많아서 가급적 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단 PET CT를 진행한 것에 대한 디스로 시작한 후, PET CT 결과 영상을 보면서 결과를 전달받는 순서가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과 달리 서울 삼성병원의 젊은 여자 의사분은 CT 영상을 보고 똑 부러지게 의견을 전달하였다. 


"우선 폐와 그 주변에 종양들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봐선 3기로 보이고요."


다른 영상을 더 보더니 추가로 의견을 전달한다.


"갈비뼈와 신장 위쪽에도 전이가 되어 있네요. 4기로 보입니다."


바로 치료 방식에 대해 덧붙인다.


"3기일 경우 2개월 동안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빡시게 진행하고요."

"4기일 경우는 평생 항암 치료를 진행하게 될 거예요."


나는 그 순간에도 그러면 영국 주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먼저 앞섰다. 프로젝트하는 내내 영국 주재원 나가는 것에 대한 희망 하나로 그 험난한 시간들을 버티면서 지내왔는데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나: "제가 내년에 영국으로 주재원 발령받아서 나가야 하는데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의사: "안되죠. 최소 1년은 휴직하셔야 될 거예요."


그냥 멍하니 그 얘기를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 뒤에 추가로 의사 선생님은 이 곳에서는 더 다양하게 조직검사를 시행할 수 있으니 빨리 입원해서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진료실을 나왔는데 너무 기가 막혀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게 정말 현실이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얘기를 듣고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게 맞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와이프가 진료실을 나왔는데 눈물을 글썽거리며 흐느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와이프가 여기서 울지 말자고 하면서 나를 다독거렸다.


병원 수납을 마치고 나왔는데 상무님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문자로 물어보셨다. 바로 상무님께 전화를 드렸다. 나 자신이 믿기지 않았는지 4기라는 말 대신에 3기로 보인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말씀드리는 순간 봇물처럼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흐느끼면서 겨우 말을 이어갔다. 


상무님께서 길게 봐야 하니 담담하게 지켜보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울음이 터지면서 경황이 없던 터라 상무님께서 건네는 위로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를 영국 주재원으로 발령받도록 뒤에서 정말 애를 많이 써주셨고 힘든 상황에서도 싫은 내색 안 하시고 늘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상무님이었는데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애써 진정을 한 다음, 입원에 앞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나가는 와중에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코로나 검사를 받을 때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어진 상태에서 검사를 받았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팀장님께서 전화가 왔다. 팀장님께도 암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고 더 자세한 내용은 조직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나 자신이 아직도 암에 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본능적으로 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대답이 나왔다.


팀장님께서는 올해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도 잘 마무리했고 곧 회사에서 공로상도 받을 분인데라고 하시면서 나는 워낙에 강하니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격려해주셨다. 평소에도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시는 따뜻한 감성을 지닌 팀장님께서 차분하게 격려해주실 때마다 계속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내가 잠시 자리 비웠던 사이에 와이프가 애들을 돌보기 위해 집에 와 계신 아버지에게 진료 결과 사실을 전달했었다고 한다. 집에 들어오니 평소에 늘 애들 보러 오시는 아버지와 동생과 더불어 어머니도 함께 와 계셨다. 어머니가 나를 보는 순간 와락 끌어안으면 괜찮을 거라고 계속 흐느끼시는데 나도 결국 통곡하면서 울었다. 가끔씩 영국 주재원 나갈 때 공항에서 부모님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는 상상을 했었는데 맞닥뜨린 현실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 건강에 대한 충격과 슬픔이 뒤덮인 순간이었다.


2년 전에 4개월 정도 흡연할 당시 아침에 나와서 담배 피울 때마다 이어폰을 끼고 자주 들었던 노래가 조규찬의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다. 이 노래의 도입부 가사처럼 나에게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얘기를 들었지. 내 가슴은 타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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