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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Jan 09. 2021

Ep.5 마르지 않는 눈물

2020년 12월 9일

아침이면 출근 준비와 더불어 작은 아이를 회사 어린이집 등원시킬 준비에 정신없이 시간이 흐른다. 그나마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등교 준비를 시키는 경우가 드물었다. 회사에서도 입원 전날이니 휴가를 쓰라고 해서 집에 있었는데 와이프가 출근 준비할 때, 잠들어 있는 작은 아이를 안고 차에 태우는 것을 도와줬다.


평범한 일상인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항상 회사 일만 우선순위로 챙기다가 정작 가족들과의 소소한 일상은 외면했던 시간들에 대한 후회, 아직 어리고 천진난만하기만 우리 아이들과 더 오랜 시간을 행복하게 지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내가 늘 회사에 일찍 출근하고 집에 늦게 들어올 때 혼자 애들 돌보느라 고생했을 와이프에 대한 미안함 등이 복합적으로 뒤섞였다.


집에 와서도 좀처럼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와이프한테 회사 잘 도착했는지 문자를 보내면서 내일 입원하러 갈 때 보호자가 같이 필요하니 혹시 회사에 휴가 낼 수 있는지 물어봤다. 와이프가 휴가를 이미 냈고 같이 갈 거라고 대답했고, 나는 그 문자에 '고마워'라고 답변을 보냈다.


그런데 아무 대답이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와이프도 흐느끼고 있었다. 와이프한테 그동안 잘해준 것도 없는데 이런 일 생기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통곡하면서 얘기했다. 와이프도 눈물을 터뜨리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뭐가 고맙냐고 그러면서 함께 울었다. 올해가 결혼 10주년인데 와이프와 함께 축하하지 못할 망정 믿기지 않는 일로 인해 서로 슬퍼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결혼하고 나서 참 많이도 싸우고 와이프를 많이 울렸다. 와이프한테 잘해준 일이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못한 일들만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라서 더욱 괴로웠고 슬픔이 증폭되었다. 같이 통화하고 나서 1시간 후에 와이프가 연락이 와서 와이프 회사에서도 이미 내 소식을 알고 있던 터라 여러모로 신경 쓸 일 많을 텐데 일찍 퇴근하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집에 오신 부모님께 잠시 큰 아이 돌봄을 부탁하고 와이프와 만나서 은행에 들러서 미뤄두었던 애들 은행계좌 정리를 했다. 부모님이 다 같이 와야 정리가 가능하다고 해서 그동안 시간을 맞추지 못했는데,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애들 은행 휴면계좌 정리하고 새로운 계좌도 개설하였다.


은행에서 볼일을 마치고 신청해놓은 영국 비자가 발급되었다고 연락 와서 비자센터에 맡겨 놓은 여권을 찾으러 갔다. 여권 찾으러 가는 길이 원래는 곧 영국으로 향한다는 모종의 설렘이 더해져야 했는데 나중에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설명할 수 없는 심정이 송곳처럼 내 가슴을 후벼 팠다. 강남역에서 남산을 거쳐 비자센터로 가는데 남산 길을 지나다 보니 10년 전 결혼하기 앞서 프러포즈를 하려고 남산의 레스토랑에서 와이프를 만났다가 사소한 일로 인해 크게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와이프가 서럽게 울었던 일이 떠올랐다.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했던 미안함이었는데 근처를 지나다 보니 미안한 감정이 서럽게 북받쳤다. 와이프한테 그때 일을 얘기하면서 내가 다 나으면 꼭 제대로 프러포즈하겠다고 얘기했다. 와이프는 이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 잘할 것이지라고 핀잔 섞인 대답을 했다.


여권을 찾고 와이프와 종종 다니던 명동교자로 향하였다. 12월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의 명동거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흐린 하늘과 맞물려 명동거리의 한적함은 적막함이 감돌 정도였다. 코로나가 가져온 적응 안 되는 풍경이었다. 명동교자에서 늘 시켜먹는 칼국수와 비빔국수의 맛은 변함없었다. 한창 다닐 때에는 사리를 5개까지 시켜서 먹은 적도 있었는데 이 날은 사리 1개도 남길 정도로 배가 금방 불렀다. 와이프와 서로 예전에는 어떻게 사리를 5개까지 시켜 먹었는지 믿기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명동교자를 나온 후 와이프와 함께 석가탄신일 때만 다녔던 길상사로 향했다.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불안함, 억울함, 두려움, 슬픔 등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최소 1년에 한 번은 찾아가는 곳인데 올해는 석가탄신일 연휴 때 가족 동반으로 친하게 지내는 어린이집 학부모 가족들과 보성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길상사까지는 못 가고 우면산에 있는 절에서 대신 불공을 드렸었다.


신앙의 힘을 빌려서라도 내 마음을 추스르고 앞으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를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드렸다.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나에게 이제부터라도 가족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전달드렸다.


불공을 드리고 나오는 길에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소원을 적도록 엽서가 놓여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적었다.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기 위한 간절함의 기운이 모든 곳에 전파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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